“정나라에 차치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발을 본뜬 탁(度)을 집에 두었다. 시장에 신발을 사러 갔는데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탁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시장에 왔을 때 장이 이미 파해 신발을 살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물어봤다. ‘직접 신어보면 될 것을 어째서 신어보지 않았소?’ 차치리가 대답했다.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나는 믿을 수 없어서요….’”

직접 신어보면 될 것을 탁이 없다고, 신발도 못 사는 차치리의 이야기다. ‘한비자’에 나온다. 살아 있는 현실을 대면하기보다 그 현실을 본뜬 탁을 더 신뢰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낸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위반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암웨이에 내린 시정명령 건을 다시 접하며 ‘차치리’가 생각났다. 공정위가 ‘차치리’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듯 해 안타깝다.
공정위는 “한국암웨이가 2008년 9월부터 소속 다단계판매원이 구입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등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했다”며 “윤리강령 및 행동지침 중 해당 부분을 삭제하라”고 지난 2014년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국암웨이는 “다단계판매의 특성을 내세워 재판매가격 유지가 판매원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시정명령 취소청구 본안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했다. 이 사안은 2년여 간 공판을 이어 왔다. 오는 7월20일 변론이 재개된다.
다단계판매는 불특정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유통업체들의 제품 판매와는 출발부터 다르다. 회원과 회원들 사이에 ‘회원가격’으로 이뤄지는 거래가 업(業)의 핵심이다. 다단계판매원이 하위 판매원을 모집할 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회원가’이다. 소비자가격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하위 판매원 모집이 자연스러워진다. 하위 판매원도 마찬가지로 ‘회원가’로 제품을 공급받아야 이를 사업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판매원들이 온라인 등을 통해서 회원가보다 싸게 제품을 판매를 하면서 시장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단 한명의 판매원이라도 회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면 대부분의 판매원은 하위 판매원 확보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위 판매원 확보는 다단계판매 방식이 존속할 수 있는 ‘근간’이다.
한국암웨이는 근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사 판매원들에게 회원가 이하로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윤리규정들을 제시했다. 이에 공정위는 ‘법 위반’의 칼날을 들이 내민 것이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법 위반으로 규정한 것은 유통업체 간 자율경쟁을 유지해 이른바 소비자들의 후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대형마트 등 일반 유통채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회원 간 판매가 업의 근간인 다단계판매에서 이 같은 규정을 곧이곧대로 들이 내미는 것이 문제다. 다단계판매업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다행히 최근 공정위는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심사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 탁이 없으면 신발도 못사는 ‘차치리’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여서 반갑다. 다음 달로 예정된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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