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소비 추세에 PB상품 대세로… 안전·품질관리는 여전히 문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던가. 요즘은 같은 값이면 ‘PB상품’이다. 과거 PB상품은 ‘가격’만이 중요한 요소였지만 지금은 ‘가성비’를 따지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길 만큼 양적, 질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똘똘한 PB상품들은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유통업체 매출 일등 공신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형마트와 편의점, 심지어 백화점에서도 PB상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매출 숨통을 트이게 했던 PB상품이 이젠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상품의 안전성과 관리 소홀 문제가 대두된 것. 가격 거품을 빼 소비자들의 지갑 걱정을 덜어줬던 PB상품에 적신호가 켜졌다.

 명_유통업체도 소비자도 ‘好好’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상품의 성능·품질 등과 더불어 ‘가성비’가 중요한 구매 요건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자체 개발하거나 협력해 만든 가성비가 뛰어난 PB상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PB상품을 선보인 유통업체는 ‘이마트’다. 이마트는 현재 러빙홈(생활용품), 피코크(간편식), 노브랜드 등 자체 PB브랜드를 통해 약 1만5000개~1만8000여개 품목에 이르는 이마트 PB브랜드 라인을 구축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PB브랜드는 올해 1분기(1~3월)기준 전체매출의 20.4%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롯데마트도 PB상품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15개의 PB브랜드를 7개 브랜드로 통합했다. 초이스엘(일반 브랜드), 프라임엘(프리미엄), 세이브엘(가성비), 바이오엘(유기농), 리빙엘(생활용품), 요리하다(간편식), 통큰 등이다. 특히 통큰은 2011년 ‘통큰 치킨’을 시작으로 ‘통큰 김치’, ‘통큰 홍삼정’, ‘통큰 블록’ 등 식품부터 생활용품, 가전, 의류, 장난감까지 범위를 넓힌 통큰 시리즈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PB상품의 매출 신장률은 2014년 3.2%에서 올해 1분이 5.7%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자체 PB브랜드 좋은 상품을 통해 우유, 생수, 고춧가루 등으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자체 간편식 브랜드인 싱글즈 프라이드의 제품군을 46개에서 100개로 확대하면 가정간편식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1인 가구의 증가 등의 이유로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간편조리식품 형태의 PB상품 성장이 눈에 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은 지난 1990년 9.0%에서 2015년 26.5%로 증가했고 오는 2035년에는 34.3%에 이를 전망이다. 이와 함께 시장조사업체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간편식 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 5200억원에서 지난해 5900억원으로 연평균 9% 지속적 성장세다.
아울러 최근 이마트와 쿠팡이 온·오프라인 최저가 전쟁이 한창이 때에도 쿠팡은 이마트의 가정간편식 피코크와 계약을 맺었다. 그만큼 식품 시장에서 PB상품의 확장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마트의 피코크는 육개장, 초마짬뽕, 새우볶음밥 등 500여종의 즉석식품을 선보이며 인기다. 최근에는 신세계백화점, 소상공인진흥공단과 함께 전통시장의 우수 상품 ‘피코크 안동인 안동 찜닭’을 간편조리식으로 선보였다. 하반기에는 마산 오동동 시장의 ‘할매 아구포’가 피코크 브랜드로 나올 예정이다. 더불어 향후 이마트는 중국, 베트남 등 이마트 해외 점포를 통해 수출하고 MBC아메리카, 알리바바 티몰 등 이마트가 거래하는 해외 유통 채널에도 출시할 방침이다.

편의점, PB상품 ‘대박’
PB상품하면 편의점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편의점 업계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20~30대 학생과 직장인을 겨냥한 도시락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CU는 지난해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함께 ‘백종원 도시락’을 출시했다. 인기는 과히 폭발적이었다. 지난 4월말 기준으로 편의점 CU 매출 상위 10개 품목 가운데 ‘백종원 한판 도시락’이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 편의점이 등장한지 27년 만에 처음으로 도시락이 전통적인 인기 상품인 소주와 바나나우유 등을 제쳤다.
세븐일레븐은 걸그룹 혜리를 간판으로 내건 도시락을 출시했다. 특히 4500원에 판매되고 있는 ‘혜리 11찬 도시락’은 지난 1분기 세븐일레븐 전체 상품 매출 중 5위를 기록했으며 세븐일레븐에서 단품 도시락이 매출 상위 10위 안에 올랐다. 또한 최근에는 동원F&B·팔도와 함께 ‘PB동원참치라면’을 출시, 첫날부터 라면 카테고리 1위 제품으로 등극했으며 출시 보름 만에 판매된 수량은 40만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세븐일레븐에서는 지난 2010년 20%를 차지했던 PB상품 매출 비중은 지난해 말 35%까지 뛰었으며 현재 PB 품목 수는 1100여 가지로 5년 전인 2010년(700여종)보다 60%가량 급증했다.
GS25는 지난 2월 선보인 ‘김혜자 명불허전 모둠치킨 도시락’을 100만개 이상 판매, 최단기간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세를 몰아 ‘김혜자 명가 소갈비 도시락’을 출시, 20~30대 직장인 층에 ‘집밥’ 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에는 한국야쿠르트와 손잡고 ‘GS야쿠르트그랜드’를 출시, 주류를 제외한 모든 마실 거리 상품들을 제치고 매출 1위를 차지하며 PB상품의 위력을 입증했다.
이처럼 PB상품이 인기를 끌게 된 데는 높은 물가로 인해 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한 PB상품을 구매하는 알뜰족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PB상품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직접 생산을 위탁해 중간 유통이나 마케팅 비용을 줄인다”면서 “덕분에 소비자들도 저렴하게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전했다.

암_상생과 살생의 기로에

하지만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을까. 잊을 만하면 PB상품의 안전성과 품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무분별한 ‘상품 베끼기’ 관행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때문으로 PB상품에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와이즐렉 살균제(롯데마트)’,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등이 모두 PB상품들이기 때문이다.
옥시 사태로 불리는 이번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인모를 폐 손상 환자들이 발생하자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으로 판단, 사용과 판매를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환경보건시민단체가 받은 피해자 접수 건수는 1528명(5월초 기준), 사망자는 239명에 달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성을 알면서도 10여년간 판매해온 ‘옥시’에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뒤늦게 옥시 한국 지사상이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라고 뭇매를 맞았고 그 동안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던 여러 정황들까지 밝혀지면서 옥시 전 제품에 대한 역대 최고 강도의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 두 업체 역시 2000년대 중반 자체 상표를 단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 판매해왔다. 검찰은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 221명 중 롯데마트 제품을 쓴 피해자는 41명(사망 16명), 홈플러스 제품을 쓴 피해자는 28명(사망 12명)으로 보고 있다.
사태가 불거지자 롯데마트는 지난달 18일 소비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100억원 규모의 피해보상 재원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홈플러스도 지난달 26일 사건에 대한 공식사과와 함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소비자들의 원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형유통업체들의 ‘인기 상품 베끼기’ 관행이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PB상품은 기존 인기 상품을 따라 한 ‘미투 상품’이 많다. 롯데마트 ‘통큰 초코파이’나 이마트의 ‘이마트 커피우유’, 홈플러스 ‘좋은상품 왕새우’ 등이 대표적인 미투 상품 사례다. 각각 오리온 ‘초코파이’, 서울우유 ‘삼각커피우유’, 농심 ‘새우깡’을 본떠 만들어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PB상품 역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고 하고 있던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본떠 제품을 기획, 중소 납품업체를 통해 제품을 생산·판매했다.
업계 관계자는 “PB제품이 품질과 가격 위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베스트셀러 중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PB상품의 상당수는 자체적인 안전성 검증도 없이 기존 인기 상품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PB상품 책임은 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품 제조방식에 따른 법적 책임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처럼 유해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하느냐는 것이다. PB제품의 생산과 제조, 판매 방식이 다양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제조·유통업체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가리기는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 관련 품질관리 책임 소재를 두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간 책임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PL법)은 물품의 결함으로 생긴 손해에 대해 물품을 제조하거나 가공한 자에게 손해배상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이에 따라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ODM(제조업자 설계 생산방식)으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책임을 회피할 방법이 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바로 이 경우이다.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의 ‘레시피’대로 생산한 제품을 유통·판매만 했다는 주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ODM 제품은 순수 OEM제품에 비해 유통업체들의 관여도가 적다”면서 “유통업체 이름을 달고 나온 제품이기는 하지만 유통업체가 요구한대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유통업체에 책임이 있다고는 볼 순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주장에 소비자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제조업체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PB상품은 유통업체들이 자사 이름을 걸고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 신뢰도가 높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관심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영향력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법조계의 생각도 시민단체들과 일맥상통한다. 제조물책임법 등에 의거해 사안에 따라 한쪽이 더 큰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기본적으로 1차 책임은 유통업체가 져야한다는 것.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제조물책임법에서 ‘제조업자’의 정의에는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또는 그 밖에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해 자신을 제조물 제조·가공·수입업자로 표시하거나 오인하게 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업자가 포함된다”면서 “이 조항대로라면 제조업체에 제조물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고 판매를 한 업체에도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자로 인정돼도 같은 법 4조의 면책조항을 근거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당 조항을 살펴보면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 공급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거나 제조물 결함이 공급 당시 법령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함으로써 발생했음을 입증한다면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면책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식품, 화장품 등 품목별로 다른 PB제품 책임 기준을 통일하고,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지난 13일 제조물책임법의 전면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철수 대표는 “피해자의 피해사실 입증 책임 면에서 제조물책임법이 민법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손해배상 범위는 민법이 훨씬 더 넓다”면서 “책임질 사람과 기업은 분명한 책임을 지고 차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3년 ‘제조물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명확한 책임 규명과 확실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최선의 대책은 예방에 있다”면서 “대표발의한 사전예방, 기업윤리 제고, 국민 안전을 위한 1석 3조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지 않는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