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민주주의 실현으로 소비자의 권리 회복해야

정치도 소비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의 하나다. 다만 시장에서 구입하는 서비스들은 소비자들이 각자 원하는 서비스를 자신의 지갑이 감당하는 만큼 살 수 없는데 반해 정치의 경우는 각자 따로 선택하지 못하고 대표를 뽑아 선택을 대신하게 된다. 어떤 소비자의 경우에는 싫어하는 후보자가 당선돼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정책적 지원이나 규제)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가 당선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누구든 1인 1표를 갖고 있어 능력(구매력)이 없어 못사는 일은 없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처럼 소비자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따로 뽑지 못하고 집단선택(학문적으로는 공공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 다수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대표로 선출하기 위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이지만 집단선택의 특성상 상당수 소비자들은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대표자로부터 서비스를 받게 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나 유럽의 작은 나라들과 같이 정책결정에 직접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소비자를 대신해 선출된 대표들이 정책을 결정한다.

정당은 이러한 정책결정이나 선거와 같은 집단선택에서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유사한 선호를 가진 소비자들이 공동으로 구매력을 행사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또 후보자 공천과정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거나 신뢰도를 높여 소비자의 선택비용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마치 시장에서 유통업자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골라 마케팅하는 것처럼 정당은 정치 상품의 유통업자이기도 하다.
야권의 승리로 말해지는 20대 총선도 그러한 정당 간 경쟁의 결과이다. 1인 1표로 사는 정치 소비자들의 구매 결과 가장 많은 정치 상품을 판 것은 ‘더민주’ 였고 2/3까지도 팔 것이라던 ‘새누리’는 40%를 턱걸이 했다. 그럼 야당이 장사를 잘한 것일까?

물론 새누리가 소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팔고 싶은 상품만 강매하려 했다는 비판은 당연하지만 성공을 자축하는 야권의 오만도 그에 못지않다. 당초 동업자들이던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장사를 못한(선거에서 패배한) 사장(당대표)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갈라서서 1개 선거구에 당선자 1명을 뽑는데 서로 비슷한 상품을 내 놓고 선택을 분산시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상품이 팔리게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여권은 공천 잡음에도 불구하고 탈당 무소속의 출마로 야권 후보가 당선된 경우는 거의 없는데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표를 분산시켜 여권이 당선한 경우가(만일, 더민주나 국민의당 득표 중 1/3 정도는 상대편 표를 잠식했다면) 어림잡아 16석이다. 야권 내부의 권력 다툼이 정치 소비자(유권자)들의 선택을 왜곡한 것이다.
물론 유권자를 무시한 여권의 독선적 공천권 행사가 민주주의 위기로 인식되면서 야권 승리로 이어졌지만 유권자들의 선택 왜곡 측면에서는 야권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야권 지지자들이 분열을 감안해 적극적, 전략적 투표를 했다거나 여권 지지자들은 무관심(기권)했다는 해석은 자칫 정당의 실패를 방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 번 총선이 보여준 것은 정당에만 의존해 정책을 결정하고 대표자를 뽑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드린다면서도 여권은 소비자들보다 집권자의 눈에 맞춘 공천과정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고 야권은 승리에 취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왜곡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다. 다수 유통업자가 경쟁하는 시장이라면 소비자 니즈를 무시하고 맘대로 상품을 강매하는 유통업자는 도태되지만 정치시장의 현실은 소비자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 상품 유통업자(정당)들을 퇴출시킬 만큼 효율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현행 제도 아래서 다당제를 통한 경쟁은 소비자 선택을 더욱 왜곡할 뿐이다.

창조경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창조정치는 어떤가? 정당 공천의 법제도적 프리미엄을 줄이는 한편, 무소속도 선호 정당을 표시할 수 있게 하고 유권자들은 1, 2, 3 순위를 정해 투표한 뒤 가중치로 계산하거나 낙선 후보 득표는 유권자가 정한 순서로 다른 후보에게 이전해 최종적으로 과반수 득표자가 당선되도록 한다면, 정당 과도한 개입이나 결선투표도 필요 없이 한차례 선거로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다.
인터넷·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선거는 물론 정책결정에서도 소비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다수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고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왜곡하는 정당 권력을 견제하는 한편, 정치 소비자들에게 정보와 신뢰를 주어 합리적 선택을 돕는 정당의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나아가 일부 선동적 네티즌들에 의한 사이버상의 여론 편향을 막기 위해서도 소비자들이 직접 정치 상품을 쉽게 고를 수 있는 디지털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를 적극화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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