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의 <정크> 김지성의 북~ 한줄 읽기

“혀와 이가 얼얼해지도록 얼음을 부수고 또 씹었다.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내 몸 전체에 울렸고, 그것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갈라졌다. 그렇게 부서진 얼음이 곧 내 몸 속에 들어와 박혔다. 얼음조각이 쑥쑥 박힌 나의 장과 폐, 간, 심장 따위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순간, 얼음이 영원히 녹지 않고 그대로 박혀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혜나의 <정크>(민음사 펴냄) 중에서.

소설 <정크>는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는 이야기이다. 사생아이자 동성애자인 ‘성재’를 등장시켜 20대 청춘의 존재 부재를 말하고 있다.
존재의 상실감은 청춘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공감의 폭이 좁지도 않다. 존재가 부재한데, 미래까지 막막한 20대 청춘인 그들은, 우리 사회 속 중년의 모습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차이는 있다. 20대가 (사회적 인간의 존재 증명으로) 출발조차 하지 못한 막막함이라면, 중년은 다시 출발을 요구받는 막막함이다.
작가 김혜나는 지난 2010년,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해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제리>를 두고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소설’이라고 평했고, 작가를 두고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표정을 제시했다’고 했다. 정작 작가는 두 번째 책 <정크>를 출간하면서 “진짜 소설가라는 게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작가는 전작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는 ‘루저’들에 불과한 청춘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의 표현으로는 ‘루저 중의 루저’를 다룬다. 제목처럼 ‘정크(쓰레기)’다. 작가는 루저의 설정을 극단까지 몰아갔다.
“절망감에 빠져드는 청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제리에서) 비정규직, 대학도 안 가고 그런 설정에서 시작했다. (정크에서 성재는) 메이크업이라는 특이한, 소수군의 직업을 갖고 있다.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절망감, 자연스럽게 동성애로 갔다. 또 틀이 갖춰져 있는 모습이 아닌 깨져있는 가정을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있지만 아버지가 아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닌, 남들이 다 갖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는 없는 인물이다.”
성재는 심지어 약(책에는 ‘홀’을 탄다고 표현된다)도 한다. 사회적 루저이자 정기적으로 보건소에 들러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성적 소수자인 성재에게 희망이 가능할까. 삶의 단 한 순간도 더는 견딜 수 없는 환멸과 고통, 그 절망의 끝에서 성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정크들의 존재론이다.
‘존재’란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축복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무시, 그리고 자기 비하와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서만 간신히 얻어 낼 수 있는 자격일지 모른다.
그나마 소설 속 ‘정크들의 존재론’에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온기’가 살아있다. 대학 졸업하고 5년 동안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던 작가는 좌절했고, 우울증을 겪었다. 그즈음 시작한 ‘요가’로 다시 살아났고, 등단했고, 소설가가 됐다.
작가는 “진짜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바닥까지 치고 내려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크>가 절망으로 내몰린 핼조선의 청춘들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깊은 ‘공감’을 건네는 것으로 읽히는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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