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된 소비 ‘돌파구’

지난 4월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외곽에 위치한 올랜드 아울렛 ‘리퍼브’ 매장. 평일 아침 주차장은 벌써부터 적지 않은 고객의 차량들이 들어서 있었다.

봄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 쌀쌀하게 느껴졌던 이날, 대형 컨테이너를 연상시키는 올랜드 아울렛 리퍼브 매장 입구에는 ‘천원의 행복’ 이벤트를 알리는 전단지와 ‘반의 반의 반값’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었다.
“직장동료 한 분이 여기서 결혼 혼수로 냉장고를 마련했다는데요. 200만원짜리 냉장고를 100만원에 샀다고 해서 와 봤어요.”

매장 입구에서 냉장고를 살펴보고 있던 3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이곳을 찾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올랜드 아울렛 리퍼브 매장에는 사실상 새 제품이지만 큰 폭의 할인가격에 살 수 있는 냉장고와 세탁기, LCD TV 등의 가전제품이 즐비했다.

리퍼브 매장의 ‘리퍼브’는 ‘새롭게 꾸미다’라는 뜻의 ‘리퍼비쉬(refurbish)’를 어원으로 한다. 리퍼브 매장은 제품에는 하자가 없지만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되거나 전시장 진열품, 흠집 등 약간의 손상이 있는 제품 등을 손본 후에 판매하는 매장을 말한다.

최근 이 같은 리퍼브 매장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장기간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리퍼브 매장을 통해 해소되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백화점 등 전통적인 유통업이 부진한 것에 반해 리퍼브 매장만큼은 20%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올랜드 매장 관계자는 “(유통) 공정상에서 발생하는 스크래치 상품이 있거든요. 그것을 저희가 싸게 구매를 해서 소비자분들한테 싸게 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기능에 문제 있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면서 “정품과 마찬가지로 1년간 무상서비스가 되고 이후 유상서비스가 되기 때문에 사용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강조했다.
스크래치 상품이라고 하지만 이곳에 진열된 제품들은 겉으로 보기에 특별히 눈에 띄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올랜드 관계자가 진열돼 있는 양문형 냉장고의 상단 한쪽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곳을 꼼꼼히 살펴보니 폭 1cm 정도의 찍힌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냉장고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부딪히면서 남겨진 자국이다. 이것이 이른바 스크래치 상품이다.

스크래치 상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문형 냉장고 옆에 있는 김치냉장고는 냉장고 안에 김치를 넣는 박스의 뚜껑이 하나 깨져 있었다. 이 역시 냉장고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파손이 됐다. 한 개의 박스 뚜껑이 파손되면서 이 김치냉장고의 가격은 80만원 넘게 떨어졌다. 183만2000원 짜리 상품이었던 이 제품은 47% 할인된 108만5000원으로 판매된다. 또 다른 정상가 250만원의 일반냉장고도 47% 할인된 137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 냉장고는 오른쪽 상단부 모서리에 2cm가량의 흠집이 있었다. 올랜드 관계자는 “흠집이 있는 리퍼브 제품은 40~50% 할인을 해서 판다”고 말했다.

정상가 189만원짜리의 한 가전사 에어컨은 가격을 48%나 떨어뜨린 99만5000원에 진열돼 있었다. 해당 에어컨은 외견상 스크래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올랜드 관계자는 “이 에어컨의 경우 정상 제품과 똑같다”며 “흠이 있다면 상자를 봉한 테이프가 한번 뜯긴 것밖에 없고, 소비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제품”이라고 말했다.

리퍼브 매장의 특징이 이 같은 거의 흠집이 없는 제품에도 적용되는 놀라운 할인율이다 보니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가격에 특히 민감한 편으로 보였다.

이날 매장을 찾은 40대의 한 여성은 세탁기와 TV 등을 둘러보는 동시에 연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다른 전자제품 온라인몰에 올라 온 관심 제품의 가격을 찾아보고 있었다.
현장에서 가격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성은 “다른 전자제품 매장이랑 가격 비교를 했는데, 여기가 좀 더 싸다”고 말했다.

올랜드 매장의 풍경은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들의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리퍼브 매장 인기 상승의 배경이 ‘가격 경쟁력’에 있다는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

리퍼브 매장에서는 전자·가전제품 등 고가의 제품군을 최대 80% 가까운 할인 혜택을 받아 구입할 수 있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 입장에서는 리퍼브 매장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리퍼브 매장의 강점은 판매 제품 자체에 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충분한 검수 과정을 거쳐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이 입소문 등으로 퍼지면서 리퍼브 매장은 알뜰 쇼핑족의 필수 코스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리퍼브는 중고 상품과는 달리 엄격한 심사기준을 거치기 때문에 새 제품과 다를 것이 없다”면서 “가격은 절반 가까이 떨어져서 소비자들에게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리퍼브 제품의 품목도 확대돼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PC, 노트북 등 IT제품이나 세탁기와 같은 전자 제품이 리퍼브 상품의 주된 구성이었지만 이제는 가구는 물론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까지로 그 판매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날 올랜드 가전 매장을 방문한 한 중년 부부도 가전 매장 뒤편에 위치해 있는 올랜드 가구 리퍼브 전시장도 둘러봤다.
이들은 “고객이 반품한 제품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상품을 싸게 판다고 해서 왔는데, 가전제품을 물론이고 가구도 반값이라 구입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A/S도 받을 수 있어 제품 구매를 결정하기에 손쉬웠다”고 말했다.

올랜드 관계자는 “지난해 다른 유통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점이 알려지면서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며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리퍼브 매장들은 리퍼브 제품의 항시 할인에 더해 매달 정례적으로 특별 할인 이벤트를 마련해 고객들의 입소문을 끌고 있다.
올랜드 파주점의 경우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는 ‘천원의 행복’ 등의 이벤트를 하고 있다. 천원의 행복 이벤트는 냉장고나 텔레비전, 침대 등을 1000원에 내놓고, 고객을 상대로 응모해 당첨자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반의 반의 반값’ 행사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리퍼브 제품만이 아니라 할인된 가격에 구비해 놓은 정품들을 이벤트 상품으로 내놓기도 하는데 추첨을 통해 최대 80%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찾는 리퍼브 제품 판매 ‘급증’


리퍼브 제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뿐만 아니라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채널과 제조사 홈페이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판매된다. 특히 11번가, 옥션, 롯데닷컴, G마켓, 리퍼브 위즈위드 등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중고상품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리퍼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오프라인 리퍼브 매장이 도심 외곽지역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이 자주 찾기가 번거로운 반면 온라인쇼핑몰들은 클릭 한 번으로 대폭 할인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실제로 온라인쇼핑사이트 G마켓은 올해 1분기 중고상품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나 늘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G마켓의 자료를 보면 특히 중고 난방 및 정정 가전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배나 성장했다. 아울러 컴퓨터부품(276%), 태블릿·게임(217%), 카메라렌즈(150%), 도서(57%), 휴대전화(40%) 등도 중고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했다.          

11번가의 중고상품 전문관 ‘중고스트리트’의 거래량도 50% 증가했다. 품목 중에서는 특히 헬스·다이어트 용품의 경우 432%가 늘었고, 건강·실버용품도 295%가 증가했다. 스포츠의류·운동화 등의 거래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배로 불었고, 중고 수입명품의 거래량도 두 배를 넘어섰다.
11번가 관계자는 “리퍼브 제품의 경우 새 상품보다 가격이 싼데다 사후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모바일 ‘중고장터’ 앱 서비스를 강화한 옥션도 올해 중고물품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20% 증가했다. 옥션의 경우에는 건강·다이어트 식품이나 이어폰·헤드폰·스피커, 보디·헤어·향수, 미씨·직장여성 의류 등의 거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배가 늘었다.

더군다나 옥션에서는 올해 들어 43%나 많은 리퍼브 제품이 팔렸다. 태블릿 PC 판매량은 무려 10배나 늘었고, TV·홈시어터 등 비싸고 부피도 큰 리퍼브 가전제품도 72% 증가했다.
현재 옥션에서는 양문형 냉장고·드럼세탁기·김치냉장고 등 고가·대형 가전 뿐 아니라 만능 리모컨·미니냉장고·전화기등 소형 가전까지 모두 9500여개 리퍼브 제품이 팔리고 있다.
옥션 관계자는 “장기 불황으로 중고를 찾는 소비자가 늘자 온라인쇼핑업체들도 중고거래 시스템(플랫폼)을 개선해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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