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느 누군가가 항상 감시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루에도 수십 번 찍히는 CCTV, 차에 타나 걸어 다니거나 어디서나 포착되는 차량 블랙박스, 핸드폰, 모바일 메신저 등 곳곳에서 감시 아닌 감시를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개인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침탈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때아닌 메신저 가입자 망명사태까지 벌어졌다. 독일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200만명 넘게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그 행렬은 끝이 없다고 하니 아연질색할 일이다. 나의 모든 움직임이 실시간 추적과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빅 브라더’와  ‘파놉티콘’의 출현이라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사는 오세아니아에는 허구의 인물인 ‘빅 브라더’가 지배한다.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를 감시하면서 통제한다. 저항하거나 일탈행위자들에게 제재를 가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그의 추종자로 만들어 간다. 이로 인해 빅 브라더는 인간을 통제하려는 권력자로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제레미 벤담이 제시한 ‘파놉티콘’ 역시 인간 감시와 통제의 전형이다. 벤담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시설을 고안하던 중 ‘파놉티콘’을 개발했다.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장치로까지 확장하기도 했다. 일종의 원형 감옥을 개발한 것이다. 중앙에는 원형의 감시탑이 있고 이 탑에는 조명이 있어 각 수용실을 훤히 볼 수 있고 탑에는 조명이 없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 결과 수용자들은 감시자가 없어도 감시자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감시자가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효율성의 논리에 기초한 인간 감시방식이다. ‘1984’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감시체제를 가동시키지만 ‘파놉티콘’은 효율성이란 논리에 기초하여 인간을 통제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합리화된 논리로서 통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유사하다.

경찰이 카카오톡의 대화방을 압수수색한 일이 벌어졌다. 사건과 무관한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마구 털어간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이버공간이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사이버검열을 강화하려고 수사조직을 확대한 사실도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범정부대책회의에 포털업체들을 불러 사이버검열을 논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민간기업인 포털사가 이용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직접 통신내용을 삭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얼마 전 또 밝혀졌다. 국감에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병헌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이통3사가 수사기관에 개인 통신자료를 762만7807건이나 건넸다고 한다.
헌법 17조는 사생활 침해금지, 18조는 통신비밀 침해금지, 2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2012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가입자의 통신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한 네이버에 대해 정신적 손해배상 위자료 50만원을 해당 가입자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공권력의 불법사찰 앞에 국민의 기본권이 헌신짝 취급당했으며 헌법이 사문화된 꼴이다. 선량한 국민들의 무료 메신저의 정겨운 ‘까똑’ ‘까똑’ 알림 소리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돼버렸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빅브라더’와 ‘파놉티콘’의 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더 이상 ‘사이버 망명자’가 일어나지 않을 특단의 제도개선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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