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길, 찾을까”

정부가 이른바 ‘최경환 노믹스’로 불리는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현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로 대표되는 경기부양책과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 등 가계소득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것이다.
‘최경환 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수 활성화’이다. 이를 위해 최경환 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지도에 없는 첫 번째 길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공격적으로 푼 것이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한도를 늘려 부동산 가격을 올릴 수 있다면 자산증가효과로 소비가 늘 것이란 기대가 담겼다. 또 적극적 배당정책과 금리 인하를 이끌어 내면서 주식시장 분위기를 띄웠고, 규제완화 의지를 분명히 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 중이다.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가계소득 증대’라는 두 번째 길을 제시했다.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으로 쌓여 있는 기업들의 돈을 가계로 흘러가게 하겠다는 것이 우선이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언급을 곁들였다. 정부는 시장에 실탄도 풀 계획이다. 우선 41조원의 돈을 풀고 내년 예산도 최대한 늘리겠다고 밝혔다. ‘뭔가 달라지나 보다’ 하는 기대를 품을만한 종합선물 세트 같은 정책 행보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야 할 정도로 한국 경제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업들은 다음 성장동력을 못 찾아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는 반면 가계 빚은 1000조원을 넘어서고 비정규직 비율이 50% 초과하는 불안정한 소득구조로 인해 내수시장은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장기침체 상태로 접어들면서 수출도 전망이 밝지 않다. 최경환 노믹스로 불리는 ‘전방위적인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배경이다.

대기업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최경환 노믹스’ 추진을 반기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는 관점에서 실세 부총리가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반응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월 초 민간·국책연구소, 학계 및 금융기관의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반영됐다. 이를 보면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응답자의 54.1%가 적절한 것으로 평가했다. ‘부적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6.2%에 그쳤다. 또 4명 중 3명(75.7%)은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내수 경제가 올해 안에 세월호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부양책이 단기적인 ‘부양’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비켜간 증상 치료에 국한한 처방일 것이란 비판이다.

경제 체질 개선 No…단기 부양에 국한 ‘우려’
정치권에서 먼저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최경환 노믹스, 비판과 대안’을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난관에 봉착한 경제상황을 타개하려는 정부의 고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고 말했다.

최경환 노믹스의 세부정책들이 경제위기 재발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부동산 규제완화나, 정책효과가 의심되는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 한시 도입 등이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최경환 부총리가 스스로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표현한 새로운 정책조합은 표면상의 취지와는 달리 현 정권 임기 동안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의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보인다”며 “일관된 경제철학이 부재해 여러 정책들이 상호 충돌하면서 효과를 반감시키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은 최경환 노믹스가 목표로 밝힌 가처분소득의 증대가 증세와 복지를 통한 분배정책을 동반하지 않고는 사실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기반 한다.

한마디로 서로 다른 두 길이 어떻게 새로운 길에서 만날 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정책조합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결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더 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최경환 노믹스는 낙수경제에 근거해 있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정부의 세제개정안을 살펴보면 세금 혜택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집중돼 소액주주에게는 세금감면 효과가 거의 없고 재벌 총수 등 대주주에게 수백억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또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경제 활성화에 매우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으로 인해 세금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는 500만명 정도의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는 점도 실효성에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낙수경제는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국가 전체적으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경제이론이지만, 글로벌 금융경제 이후 현재는 그 효과가 의심되고 있다. 국내 사정만 봐도 대기업들은 55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이 있는 반면 가계는 부채 1000조원이 넘는 지경으로, 대기업의 성장이 가계에 충분한 온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 정책위의장은 ‘최경환 노믹스’를 ‘격화소양(隔靴搔)’라는 사자성어로 총평했다. 격화소양은 ’발에 염증이 났는데 구두 위만 긁고 있다‘는 의미다. 우 정책위의장은 “가계소득 중심 경제성장을 수용한 측면에서 정책방향을 잘 잡은 듯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들에 있어서는 매우 미흡하거나 부적절한 접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철학 부재로 정책 상충…효과 반감
학계에서도 가계소득을 키우겠다는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막상 뚜껑을 연 세부정책들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 대학원 교수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막상 차려진 밥상은 별로 신통치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물론 유 교수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해온 ‘소득주도 성장론’도 수용했다”며 일정 부문 호평을 했다.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 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라는 참신한 정책수단을 들고 나왔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촉진까지 언급한 점을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유 교수는 “재정은 여력이 별로 없고, 추경 편성도 없이 기금 여유분을 활용하고 공기업 투자를 확대한다는 정도로 수요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규제완화도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유 교수는 “여러 정책들이 상충해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완화와 세제혜택으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공급 중시정책이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부추겨 소득주도 성장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부유층에 유리한 배당소득에 대한 혜택이나, 지불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한 근로소득증대세제도 마찬가지”라며 가계소득 증대 효과를 의심했다. 실제로 최경환 노믹스의 대표적인 가계소득 증대 정책인 기업소득환류세제로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을 끌어낸다 해도 내수가 얼마나 부양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이 회사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 돈이 저소득층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내수가 부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달 100만원 받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50만원 인상되면 그중 상당 부분이 소비로 들어간다. 하지만 월수입 10억원인 금융 자산가가 50만원 정도의 배당금을 추가로 받는다고 해서 특별히 소비를 더 늘리지는 않는다.

문제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가동해 대기업이 토해낸 사내 유보금은 노동자(임금)보다 주주(배당금)에게로 흘러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또 대규모 사내 유보금을 축적한 기업의 주주와 직원들은 이미 중산층 이상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중단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발을 묶고 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최경환 부총리도 인정한 것처럼 한국 경제의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길은 모든 계층이 일한 만큼 정당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어 소비가 살아나고 내수가 활성화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복지지출 확대, 중소기업 지원 같은 정책에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 자영업자 ‘유탄’ 맞을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는 최경환 경제팀이 내수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가 오히려 자영업자들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425조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더 키우게 되면 가계 부실만 심화되고 궁극적으로 내수가 더 위축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첫 번째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중소자영업자들이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DTI의 완화가 자영업자 스스로의 부실을 가속화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공격적인 경기 부양 의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최경환 경제팀이 LTV와 DTI를 각각 70%, 50~60%로 완화한 것은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살려 이를 경기 부양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소비를 위축시킬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더 받으면 소비는 한층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경기가 어느 정도 부양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내수 위축으로 그 효과가 상쇄되면 결과적으로 내수는 더 얼어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LTV가 높으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가격이 하락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금융권마저 잇달아 대규모 부실위험에 노출 시켜서 경제 위기로 확대될 소지마저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되면 연쇄적으로 금융권이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출을 대폭 줄이는 한편 기존의 대출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이게 될 공산도 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에 계속 바람을 불어 대는 형국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LTV·DTI 완화는 부채를 늘리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부채주도 성장’이라 할 수 있다”며 “하우스푸어 150만시대, 가계부채 1000조 현실을 더 악화시켜 대출받아 집을 샀다가 추가로 집값이 내리면 바로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 대학원 교수도 “부동산을 비롯해 금융완화 및 금융지원 정책은 결국 부채를 증가시키는 일”이라며 “소득증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융부실과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우려는 DTI의 완화로 자영업자들이 사업자금 활용 등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추가할 수 있는 여지가 늘면서 자체 부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이전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보다 사업자금을 충당하는데 많이 사용하곤 했다”며 “이번에 DTI 비율이 높아져 사업자들이 은행에 추가 대출을 문의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 사업자금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하는 자영업자 비중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신한·하나·농협 등 4개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 가운데 50대 이상의 대출 비중이 올 6월말 현재 42.7% 수준에 이르는데, 은행권에서는 이 중 상당수가 집을 담보로 잡혀 창업자금이나 운영자금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는 가파르게 증가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자영업자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가구의 자영업 가구의 신용대출액은 2012년 1327만원에서 2013년 1678만원으로 26.4%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자영업자 중 다중채무가구의 부채규모는 1억7913만원에서 2억890만원으로 늘어났다. 다중대출이 늘었다는 그만큼 부채의 양과 질이 악화되는 추세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채가 많아지더라도 갚을 수 있는 소득이 커진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자영업자들의 소득증가율이 정체 상태이고 보면 자영업자의 부채는 악화일로이다.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를 보면 지난해 자영업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월311만1000원으로 401만5000원인 임금노동자 가구에 비해서 90만4000원이나 적었다.
종합해보면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은 이미 빚이 절대적으로 많은데다, 소득증가율이 떨어지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도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의 원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규제 완화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칫 자영업자 파산정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세밀한 보완책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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