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득이와 만득이가 용돈을 털어 케이크 하나를 샀다. 이제 맛있는 케이크를 갈라먹을 차례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내심 케이크를 둘로 갈랐을 때 더 큰 것을 먹고 싶어 한다.

성격이 적극적인 칠득이가 칼로 케이크를 2등분하더니 한쪽을 잽싸게 가져갔다. 칠득이는 정확하게 2등분했다고 생각하고 하나를 집어 맛있게 먹고 있지만 만득이는 내심 불만이다. 만득이가 보니 칠득이 것이 더 커 보이는 게 아닌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심리’이다.

칠득이의 표정을 본 만득이 또한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자기는 분명히 공평하게 2등분했고, 아무거나 하나를 가져갔는데, 만득이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눈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다 불만이다. 칠득이는 분명히 공평하게 나눴는데 만득이가 자신을 불공평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불만이고, 만득이는 칠득이가 자기 욕심만 챙기는 것 같아 불만이다.

이 경우 두 사람 모두 불만이 없게 하는 방법, 그리고 제한된 자원(케이크)을 가장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은 분배하는 사람과 먼저 선택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즉 칠득이가 케이크를 자르면 만득이가 먼저 반쪽을 가져가고, 반대로 만득이가 자르면 칠득이가 먼저 반쪽을 가져가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게 더 커 보이는 심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예를 든 ‘케이크 갈라먹기’는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전개한 스토리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이러한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한다. 또 이러한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업의 사원관리도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이기적 인간이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행동하는 합리적인 인간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을 경제학에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경제인(economic man)이라 한다. IMF 사태 이후 우리사회를 풍미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조와 경제정책은 모두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인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생산성에 따른 임금차등화, 연공서열 폐지, 성과급제, 무한경쟁 등이 모두 이런 것들이다. 즉 일한 성과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한마디로 돈을 유일한 모티베이터(motivator)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돈만이 모티베이터로 작용하는가?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중요
최근 발전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연구 성과는 전통적인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작은 이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돈만이 유일한 모티베이터가 아니라 공정성, 형평성,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내부적 모티베이션(intrinsic motivation), 정체성, 체면, 위신, 타인에 대한 배려 등도 매우 중요한 모티베이터가 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이성적이기보다는 다분히 감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인간은 받는 돈의 절대액수가 아니라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따져 적은 금액에도 만족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많은 금액에도 불평을 하거나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정성이나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에는 아무리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 독재자 게임 등은 이를 확인시켜준 실험이다.

강태공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육도삼략(六韜三略)이란 병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수되는 사람은 반드시 병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안전과 위험을 같이 해야 한다. 그러면 병사들은 앞장서서 적을 공격할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전쟁에서 이겨 적을 전멸시킬 수 있다.

옛날에 훌륭한 장수가 전쟁에 나갔을 때, 가끔 막걸리 통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장수는 그것을 냇물에 부어 병사들과 함께 흐르는 냇물을 마셨다고 한다. 대저 한 통의 막걸리를 부어 가지고 냇물의 맛이 술맛으로 변할 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전군의 병사들이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하는 것은 그 술맛이 병사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다.”

맹물 같은 막걸리 맛이지만 장군과 함께 똑같이 나눠 마신다는 이 사실이 병사들의 사기를 돋워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한다고 이야기다. 이것이 공정성의 위력이다.

우리사회는 분배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파이를 키워서 나눠먹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되는 점은 ‘파이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공정하게 그 파이를 나눠먹느냐’ 하는 것이다. 공정성의 문제는 파이의 크고 작음과는 무관하다.

아무리 파이가 작더라도 공정하게 나눠먹으면 불만이 없으나 아무리 파이가 크더라고 불공정하게 나눠먹는 현상이 발생하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선진국인 영국의 폭동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99% 대중들의 월가 점령시위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