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범위’에서 해법 찾은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메리케이코리아와 씨엔에이치이노이브를 미등록 다단계판매 행위로 고발 및 시정명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판매원이 되기 상당기간 이전부터 자사의 소비자였던 경우가 아니라, 판매원이 되기 위해 재화 등을 구매한 경우도 소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판매원 가입 여부를 다단계 조직 구성의 필수 조건으로 봤던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면서도 기존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판매원 되기 위해 구매한 경우도 ‘소비자’

공정위는 이번 조치에 대해 지난해 4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8월 아모레, LG생활건강 등 국내 주요 화장품업체들이 방문판매업으로 신고해놓고 실제로는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고 있다며 영업행태를 바꾸거나 다단계 영업자로 등록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업체들이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무늬만 방판’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연달아 방문판매 업체들이 승소하고, 결국 공정위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해 4월 22일 전원회의를 통해 이들 업체에 내려진 방문판매법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직권취소하며 ‘무늬만 방판’ 논란은 일단락 된 듯 보였다.

당시 법원에서는 방판법 2조 5항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을 엄격히 해석·적용한다는 전제하에, 다단계판매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후원수당 및 단계기준 뿐만 아니라 ‘판매업자가 공급하는 재화 등을 구매한 소비자 중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판매원으로 가입시켜야 한다’는 조건까지 충족시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공정위는 소비자를 자신의 하위 판매원으로 두는 것이 다단계판매 조직으로 규정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보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이 부분을 ‘다단계판매 정의’ 규정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 기준에 따르면 사실상 소비자를 판매원으로 가입시켰는지 여부를 증명하지 않는 한 방문판매 업체를 다단계판매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공정위는 메리케이코리아와 씨엔에이치이노이브에 대해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충분히 다단계판매로 규정할 수 있다고 봤다. 현행 방판법 시행령 제4조 ‘소비자의 범위’ 부분이 그 근거다.

방판법 시행령 제4조 3호를 보면 ‘다단계판매원이 되고자 다단계판매업자로부터 재화 등을 최초로 구매하는 자’ 또한 소비자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비자로 인식하는 ‘판매원이 되기 상당기간 이전부터 재화 등을 구매한 소비자’가 아니었더라도 판매원이 되기 위해 재화 등을 구매했다면 소비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환 공정위 특수거래과장은 “대부분의 업체들은 판매원이 되기 위해 재화 등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모든 판매원들이 일단은 소비자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 이후 판매원의 일부만 소비자여도 되는지, 아니면 모든 판매원이 소비자였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방판법 시행령 제4조 3호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논란이 생길 여지 자체가 없어진다”고 밝혔다.

 

공정위, 정부안 관철 의지 분명

특히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을 벌였던 방문판매 업체들에 대해 시정명령을 취소했던 공정위가 ‘소비자의 판매원 가입여부’에 대한 논리를 보완해 다시 비슷한 사안에 대해 이와 같이 조치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현재의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방판법 2조 5항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의 가목의 ‘재화 등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것’과 나목의 ‘소비자의 전부 또는 일부’라고 명시된 부분에서 ‘소비자’를 삭제한 방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소비자’ 항목을 삭제함으로써 소비자를 판매원으로 가입시켰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후원수당과 단계기준 만으로도 다단계판매로 정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 공정위의 입장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사실상 다단계판매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는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정의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방판법 개정안은 총 4건이다. 이들 개정안의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을 살펴보면, 공정위 안과 홍영표 의원 안, 김동철 의원 안은 기존의 대다수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박상돈 의원 안은 인적 단계와는 상관없이 후원수당 지급 단계가 1단계일 경우 방문판매조직으로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존의 방문판매 업체들이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문판매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박상돈 의원 안과 나머지 3개 안이 ‘다단계 판매 정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방판법 개정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정무위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아직까지 방판법에 대한 논의가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 ‘다단계판매 정의’를 둘러싼 법안 간의 입장차가 큰데다가 주요 쟁점 법안으로 분류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방판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메리케이코리아와 씨엔에이치이노이브에 대한 조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정위의 기존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정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은 확고하다.

김성환 과장은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국회 정무위 안에서 결정될 사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미 대통령의 결재까지 끝난 정부안이니 만큼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정위가 제시한 논리에 따른다면 만약 방판법이 현행대로 유지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존 방문판매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메리케이코리아 측은 공정위의 이번 조치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케이코리아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판매원의 일부만 소비자였기 때문에 지난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문제가 없다”며 “몇몇 로펌에 법률 자문을 받아 이와 같은 내용을 확인했으며, 즉각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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