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 이몽학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고,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15만 왜구는 순식간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려는 절체 절명의 순간, 이몽학의 칼 끝은 궁을 향하고, 황정학 일행 역시 이몽학을 쫓아 궁으로 향한다. 포화가 가득한 텅 빈 궁에서 마주친 이들은 운명을 건 마지막 대결을 시작하는데…

2005년 천만 신화를 기록한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2010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으로 돌아 왔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은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정치 논리에 휘둘려 희생달할 수밖에 없었던 약자를 전면에 내세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어둡고 억압적인 세상에 치열하게 부딪히며 자신을 둘러싼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이 빚어내는 뜨거운 드라마를 통해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 사랑, 꿈을 이야기 한다. 나라의 운명에 등 돌린 채, 동인, 서인으로 갈라져 당파 싸움만 일삼는 무능한 정권, 그 틈바구니 속에서 좌절된 꿈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던 인물들의 모습 속에 201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욕망과 갈증을 투영한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새로운 사극을 기다려온 한국 영화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네 주인공은 각자 다른 사연과 꿈을 품고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 맹인검객 황정학은 대동 세상을 함께 꿈꿨던 이몽학의 야망을 막기 위해 칼을 들고, 반란군 이몽학은 오로지 자신의 꿈을 좇아 피도 눈물도 없는 칼을 휘두른다. 세상 앞에 무력하기만 했던 서자 견자는 황정학을 만나 검술을 익히며 비로소 내면의 성장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들의 칼이 칼집에서 꺼내지는 순간과 칼과 칼이 서로 부딪히는 찰나, 그것은 단순한 액션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연과 감정이 말보다 더 강렬하게 부딪히는 ‘칼의 대화’가 된다.

이준익 감독은 판타지적인 와이어 액션을 배제하고,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사실감 있는 액션을 통해 이러한 의도를 더욱 살렸다. 드라마의 기승전결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인물들의 갈등을 파워풀하게 담아내는 칼싸움 장면들은 액션 자체의 시각적 쾌감 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 맞물리며 더욱 강렬하고 깊이 있는 드라마로 완성된다. 2010년 액션 사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제껏 보지 못한 ‘마음의 액션’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박홍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하며 제작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조선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역사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욕망과 갈증을 투영한 작품으로, ‘왕의 남자’ 이후 5년여 만에 선보이는 ‘이준익표 사극’의 대단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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