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멸의 비극

 
극단미추가 2008년 정기공연으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9월 4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올린다.

노쇠한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왕국을 삼분하여 나눠주겠다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첫째 거너릴과 둘째 리건은 온갖 미사여구로 자신들의 사랑을 과장하여 표현하지만, 정작 가장 사랑받던 코딜리어는 거짓된 사랑을 말할 수는 없다고 대답한다. 리어왕은 이에 격분하여 코딜리어를 내치고, 그녀는 구혼을 위해 와있던 프랑스 왕의 아내가 되어 왕국을 떠난다. 그러나 리어왕의 기대와는 달리 거너릴은 아버지를 냉대하고, 거너릴의 냉대를 참지 못해 찾아간 리건 역시 그를 박대한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두 딸에게서 쫓겨난 리어왕은 광대와 함께 황야를 헤매는 신세가 된다.

이 작품은 리어왕을 비롯한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증오, 질투, 이기심, 권력욕과 그로인해 파멸되는 인간의 비극을 그려낸다. 욕망에 빠져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끝내 자식들에게 버림받는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질투하고, 배신하다 끝내 파멸하는 자식들. 이렇듯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으로 대변되는 과거 세대의 욕망과 파멸의 과정은 리어왕의 세 딸과 에드먼드 같은 젊은 세대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지만, 이들은 파멸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인간 심리에 대한 시공간을 초월한 깊은 통찰력으로 그런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이것이 바로 <리어왕>이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고 사랑받는 이유이다.

<강 건너 저편에> 이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한 연출가 이병훈은 이번 무대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리어왕>을 선보인다. 그는 원작의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인물과 사건을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과감하게 생략, 압축하여 이 작품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조선시대 누각인 경회루를 응용하면서도 언뜻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무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작품의 의미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릿광대 같은 인간군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폭풍우 장면에서는 자기 내면의 소리와의 싸움을 격렬한 자연현상으로 상징해 표현해낸다.

배우들 또한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정태화, 최용진, 서이숙 등 극단미추의 배우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고난도 워크숍을 거치며 완성도 높은 공연을 준비해왔다. 1년여에 걸친 워크숍으로 최대 강점이던 ‘연기의 조화’는 정점에 올랐으며, ‘자끄 르꼭 국제연극학교’의 최초 동양인 교수로 활약한 신체움직임 전문가 유진우와 대사위주의 연극에서 탈피하여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오브제 극을 선보여온 김진영에게서 신체, 소리표현훈련을 받아, 보다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해졌다. 인간 내면의 극한을 추구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와,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이뤄질 이병훈 식 연출을 표현하기 위한 최상의 상태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최고의 고전 <리어왕>. 그리고 특별한 방식으로 작품을 재해석해낼 연출과 최상의 상태로 준비된 배우들. 이 세 요소의 조합이 어떤 <리어왕>을 만들어냈을지, 이번 극단미추의 공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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