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연의 경제 이야기

이성연 박사
이성연 박사

 

소비자잉여란 무엇인가? 어떤 상품의 일정량에 대하여 소비자가 실제로 치르는 대가와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가치와의 차이를 소비자잉여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1000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800원에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즉 기꺼이 1000원을 지불하고도 구매할 용의가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800원에 구매할 수 있을 때 그 차이, 즉 200원을 소비자잉여라 한다.

소비자잉여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정립한 소비자잉여의 개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점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론이다. 소비자잉여가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살기 때문이다.

이때 소비자는 판매자의 희생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교환이 이루어질 때 한쪽이 이득을 보는 만큼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같이 이득을 본다. 즉 소비자는 소비자잉여를 얻고 공급자는 생산자잉여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서로 잉여를 주고받는 것이다.

소비자잉여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소비자잉여는 우리가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발생한다. 만일 용인시에 매우 똑똑한 몇 사람만 살고 있다고 하자. 그들은 현재의 가격으로 상수도를 사용할 수 있을까? 현행 요금으로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용인시에 커다란 할인마트가 존재할까? 은행이나 우체국이 있을까? 소방서가 있을까? 약국이나 큰 병원이 있을까?

이와 같이 우리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기 때문에 계산할 수 없는 규모의 소비자잉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매우 잘난 사람들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잘난 사람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천부적 인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모두 이득을 주기 때문에 존중되고 배려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무엘슨(P. A. Samuelson) 교수는 말한다.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이루어놓았다고 생각하는 기업의 창립자도 실은 수많은 사람들과 모든 사회제도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며, 그 사업이라는 것도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의 공동의 산물인 방대한 기구와 시장, 그리고 사회전체적인 분위기의 혜택 속에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 사회적인 요인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면 거기에 남는 것은 풀뿌리와 열매와 작은 생물과 곤충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가는 벌거벗은 야만인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의 가족 및 친인척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 전체, 그리고 모든 인류가 나에게 이득을 주고 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이득을 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타고 있다(We are in the same boat.). 따라서 배타적 이기주의는 나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공동체 중에서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공동체는 애터미라는 공동체이며, 보다 가까이는 내가 속한 팀 또는 라인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을 주거나 받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혼자서는 그런 잉여를 생산할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고, 이런 이론적 바탕 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작동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바로 집사광익(集思廣益)의 자세로 일해야 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한데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丞相)이었던 제갈량이 하급관리에게 내린 글속에 있는 말이다. 집사광익의 전제조건은 바로 겸청(兼聽)이다. 겸청은 집단지성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말한다. “승상부(丞相府)에서 많은 관리들을 임용하여 국가의 대사를 돕고 공동으로 참여하게 하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고 각 방면의 유익한 건의를 널리 청취하기 위함이다. 정확한 의견을 얻음으로써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죄를 범하게 될까 두려워하거나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일에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겸청과 집사광익은 애터미 사업의 성공조건이다. 신출귀몰의 재능을 가진 제갈량이 그럴진대, 애터미 사업자가 혼자 잘 낫다고 설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떤 개별지성도 집단지성을 능가하지 못한다.

‘못난 갖바치 셋이 제갈량을 이긴다’는 속담이 집사광익을 잘 나타내 준다. 애터미 사업자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바로 겸청과 집사광익 때문이다. 혼자서는 아무리 잘해도 산술급수밖에 기대할 수 없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