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삼의 법률산책

법무법인 태웅 박형삼 변호사
법무법인 태웅 박형삼 변호사

 

Q. 얼마 전 회사 대표이사로부터 잠깐 보자는 연락을 받고 면담하였습니다. 대표이사는 제가 협력업체로부터 골프와 술 접대를 받고 다닌다는 익명의 투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혹시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하여 투서를 직접 봐야겠다고 하였습니다. 글의 표현 방식이나 내용 등으로 볼 때 옆 부서의 A 부장이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제가 A 부장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A. 일반적으로 같은 직장 임직원의 비위 사실을 발견한 경우 그 내용을 회사 경영진에게 알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해당 임직원의 비위행위가 공익 침해행위에 해당할 때는 공익신고자로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일정한 보호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인에 대한 사적 감정 등을 가지고 허위의 사실을 익명으로 투서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허위의 투서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죄와 같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별도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형법상 허위 사실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성립합니다(형법 제307조 제2항). 현행법상으로는 허위 사실이 아닌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만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을 결한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99도5622 판결).

나아가, 개별적인 소수에 대한 발언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고도의 가능성 내지 개연성이 필요합니다. 특히 발언 상대방이 직무상 비밀유지의무 또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공무원이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으로 인하여 비밀의 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로서 공연성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공연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나 신분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해야 합니다(2020도5813 판결). 본 사안에서 A 부장이 허위의 투서를 회사 대표이사에게 우편물로 보냈다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 중 공연성 요건이 충족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 대표이사의 경우 그 관계나 지위 등으로 볼 때 투서 내용에 대한 비밀보장이 상당히 높은 정도로 기대되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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