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연 박사
이성연 박사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이 말은 수천 년 전의 지혜에서 나온 말이지만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인 오늘날에도 금과옥조 같은 경구(警句)이다.

정주영회장의 ‘빈대철학’

필자는 ‘서민부자’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이들은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사소한 것에서 배우고,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전형적인 예를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에게서 발견한다. 주지하다시피 정회장은 강원도 통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소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무작정 상경을 했다.

정회장은 평소에 직원들에게 일을 시켰을 때, ‘해보지도 않고 지레 판단하여 안 된다’는 대답을 하면 역정을 내면서 일갈했다고 한다. “임자! 하기는 해봤어? 이 빈대만도 못한 놈!” 얼핏 듣기는 어감이 썩 좋지 않으나 여기에는 정주영 회장의 ‘빈대철학’이 들어 있다고 한다.

조선소도 안 지어놓고, 달랑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 들고 영국 은행에 돈 빌리러 가고 배를 수주(受注)하러 간 그 배짱과 도전정신은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것일까? 정주영 회장의 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보면 그것은 놀랍게도 빈대에게 배운 것이라 한다. 이른바 빈대철학이다.

해결책을 찾으려면...빈대처럼

빈대(bedbug)는 이(lice)나 벼룩(flea)처럼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물것(biting insects)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이런 물것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정회장은 무작정 상경해서 초기에는 인천부두 노동자로 일을 했다. 고된 일과가 끝나면 그는 판자로 지어진 허름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잤다. 공사장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원인은 바로 빈대였다. 빈대가 온몸을 기어 다니며 물었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밤에 제대로 잠을 못자 피로가 풀리지 않으니 낮에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빈대를 피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첫 번째는, 몸에서 땀 냄새가 나서 빈대가 무나 하고 자기 전에 온몸을 깨끗이 씻고, 이불을 청결하게 한 다음 자보았다. 그런데도 빈대는 계속 물었다. 두 번째는, 다른 노동자들과 같이 잠을 자서 그러나 하고 혼자 떨어져 자기 위해 허름하게 나무로 침대를 만들어서 혼자 자보았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어디선가 빈대가 나타나 밤새도록 물었다. 세 번째, 빈대가 어디에서 오나 하고 관찰해보았더니 침대 다리를 타고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침대 4다리를 물통에 넣고 물을 가득 채웠다. 빈대가 침대 다리를 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그러자 며칠 동안 빈대가 물지 않았다. 이제야 잠을 펀하게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어디선가 빈대가 나타나 또 물기 시작했다. 도대체 빈대가 어떻게 침대로 올라오는지 몰라서 밤에 관찰해보았더니,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 천정에서 침대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천정을 뜯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회장은 그렇게 끈질기게 방법을 개발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빈대의 끈질김에 감동했다. 빈대도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구나! 이런 사실에서 교훈을 얻은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원인을 분명히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정주영 회장의 빈대철학이다.

기적의 바탕에는 피나는 노력이 존재

필자도 정회장과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셋방을 얻어 자취를 했었다. 고등학교 동급생과 같이 했는데, 집에 빈대가 득시글거렸다. 이상하게도 그 친구는 물지 않는데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묘안을 생각해낸 게 바로 DDT였다. 방이 제법 넓었으므로, 그 친구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이부자리를 펴고 내 이부자리 주변을 완전히 DDT로 둘러쌌다. DDT는 맹독성이므로 감히 그곳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과연 그 방법을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며칠뿐이었다. 분명히 DDT로 성을 쌓아 놓았는데도 빈대가 다시 물기 시작했다. 도대체 빈대가 어떻게 DDT 장벽을 넘어오나 보기 위해 관찰해보았더니 DDT 장벽을 넘어오는 게 아니라 천정으로 기어 올라가 거기서 바로 내 이부자리로 자유낙하 하는 것이었다.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정회장의 말한 것처럼 천정을 없애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결국 그 집을 나와서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이 독일의 경제발전을 라인강의 기적, 한국의 경제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면, 정회장은 “종교에는 기적이 있을지라도 정치와 경제에는 기적이란 없다. 우리 국민들이 진취적인 기상과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을 쏟아 부어 이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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