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막바지로 향한다. 온 대지를 붉고 노랗게 물들였던 절정의 순간은 너무나 짧다. 떠나는 가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쉽다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으로 가자. 가을의 낭만과 섬의 운치가 만나는 경기도 화성의 작은 섬, 국화도에서 깊어가는 계절을 만끽한다.

가을의 낭만과 섬의 운치가 만나다

국화도는 충남 당진군 장고리에서 배를 타면 20분 거리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다. 화성 궁평항에서 배를 타면 40분 정도 걸린다. 주민이 60여 명 남짓 사는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에 유배지였다. 만화리에 속해 만화도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국화리가 되면서 섬 이름이 바뀌었다. 섬 둘레는 3km가 채 되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섬에 첫발을 디디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병아리처럼 샛노란 국화도 등대다. 국화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 등대는 서해의 푸른빛과 잘 어울려 포토존으로 인기다. 항구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면 소박한 어촌의 모습이 정겨워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쁜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섬의 일상은 천천히 흘러간다. 따스한 가을볕 아래 잠에 빠져든 고양이와 담벼락 아래 흔들리는 들꽃,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의 손길. 가을빛 아래 모든 것이 여유롭다. 그래서일까. 오늘만큼은 섬 일주라는 거창한 목표 대신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걸어보고 싶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국화도 해수욕장이다. 갯바위 사이로 펼쳐진 나만의 프라이빗 비치 같은 해변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바닥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일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이곳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해수욕장 왼편에 있는 매박섬이다. 소나무로 덮여있는 매박섬은 썰물 때 국화도와 연결되어 건너갈 수 있다. 매박섬에는 하얀 모래 같은 결정체가 모여있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데기가 모여있는 조개무덤이다. 그만큼 이곳에 조개가 흔하다는 뜻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국화도 둘레길

매박섬을 지나 섬의 왼편으로 계속 걸어간다. 물이 빠지고 나니 너른 갯벌이 나타난다. 어장 매표소에서 비용을 내면 바지락과 게, 소라, 굴 등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진득한 뻘이 아니라 돌밭이어서 운동화를 신고도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갯벌 끝에서 500m쯤 걸어가면 국화도와 나란히 서 있는 무인도 토끼섬이 나온다. 이곳도 매박도처럼 물이 빠지면 오갈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섬 속의 섬을 여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고, 물이 들어오면 모자처럼 봉긋한 섬을 바라보며 멍때리기 그만이다. 토끼섬으로 가는 바닷길 주변에는 고동을 비롯한 각종 조개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호미 하나 들면 망태기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국화도 선착장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국화도 전망대에 이른다. 해송이 우거지고 길이 조붓해 해안산책로에서 느끼지 못했던 숲길의 운치가 있다. 언덕 정상에는 국화도 선착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한가롭게 바다를 유영하듯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작은 위로를 받는다. 전망대를 내려와 섬의 서쪽으로 가면 사뭇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동쪽 해안에는 갯바위와 자갈이 많았다면 서쪽은 조개껍데기와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걷다 쉬며 섬을 한 바퀴 돌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길어지고 해넘이 시각에 다다랐다. 일교차가 큰 가을철에 보는 일몰, 게다가 섬에서 만나는 일몰이라면 환상의 조합이다. 핏빛처럼 붉고 푸르게 시시각각 변하는 낙조는 짧지만 강렬했던 가을의 추억을 연상케 한다. 수려한 가을 같았던 태양을 수평선 너머로 보내며 내일은 새로운 태양을 기대할 수 있으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국화도에서 짧지만 긴 하루를 마감한다. 국화도 둘레길을 걸으며 빼어난 자연 풍광 속에서 느리게 사는 맛, 그것이 참 힐링이다.

여행정보

문의: 국화리어촌체험마을 : 031-356-9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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