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존심이라는 말과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쓰기도 한다. 그러면 두 개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평소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으니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매우 대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누구로부터사랑과 존중을 받느냐와 관련된다.

자존심(Pride)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품위를 높이는 마음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자존감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self-esteem)의 약어이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이라는 용어는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철학자이며 하버드 대학에 심리학과를 만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1890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먼저 자존심에 대해 검토해보자. 자존심(pride)은 나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주변과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자존심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낮아지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우쭐해진다. 예를 들어 수학시험을 치렀는데 95점을 맞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높은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 자기와 라이벌인 학생이 98점을 맞았다고 하면 자신이 비참해지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 학생이 90점을 맞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쭐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자존심은 객관적인 현상이 아니라 주변과의 비교를 통한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한다.

자존감(Self-esteem)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이고, 자존심만 강한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아직 혼미(identity diffusion)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평판이 아닌 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내가 주체이고 남들은 객체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거나 험담을 할 때도 확고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존심이 상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자기 주관을 견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 다시 말하면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거기에 맞도록 행동을 한다. 따라서 삶이 매우 피곤하다.

시선의 방향에 따라

전문가들은 자존심과 자존감의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방향에 있다고 말한다. 자존심의 시선은 나의 밖을 향하고 있고, 자존감의 시선은 내 안을 향하고 있다. 즉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보는것이라면, 자존감은 나 스스로 나를 보는것이다. 따라서 자존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기에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건 말건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므로 주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을 조언해준다 하더라도 지존심이 상하기는커녕 너그럽게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높이 평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의 결점을 지적해주고 개선방향을 조언해주면, 몹시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해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줄도 안다. 그러나 자존심만 높은 사람은 자기만 칭찬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며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자존심 상해하고 깎아내리려 한다.

자기가치의 확인

그러면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까? 스탠퍼드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클로드 스틸(Claude M. Steele) 박사는 자기가치의 확인 강조한다. 그는 자기가치 확립이론을 통해 자기 이미지에 중대한 위협이 닥쳤을 때 그 위협과 무관한 자기의 중요한 측면을 확인함으로써 총체적으로 긍정적 자기개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치를 확인하여 자아개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게 되면 자기 이미지를 손상할 수 있는 중대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러한 위협을 완화할 수 있고, 자기 위협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심적 자원을 제공해준다고 그는 강조한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이 있다. ‘뿔을 가진 자는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도 강점이나 재주를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서너 가지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다. 자신의 약점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 강점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자존감을 기르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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