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듯한 더위도 어느새 물러갔다. 곧 산야는 울긋불긋 물들고 바람은 선선해질 것이다. 여름과 가을을 잇는 9. 문학의 향기가 배 있는 마을을 찾아 문학기행을 떠나본다. 그곳은 경상북도 영양 주실마을이다.

오지마을에 감춰진 진보적 기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조지훈의 승무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온다는 이유로 무조건 외웠던 시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퍽 반갑다. 현대 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영양군 주실마을이다. 서울에서 4시간가량을 달려야 도착하는 봉화, 청송과 더불어 경상북도 3대 오지에 속하는 곳이다. 주실마을은 1630년 호은공 조전(1576~1632) 선생이 식솔들을 이끌고 정착하면서부터 한양조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을 비롯해 옥천종택, 만곡정사, 월록서당, 지훈문학관, 지훈시공원 등이 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은 17세기 말에 지은 호은종택이다. 집안 구조는 경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반가의 형태인 ㅁ자형이다.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탓에 방문에는 미닫이와 여닫이 이중문을 달았다.

주실마을은 매우 진보적인 마을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이 발달한 안동 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실학을 받아들였고, 교회도 가장 먼저 세워졌다. 1900년대 초에 단발을 시행했으며, 근대교육을 실시한 영흥학교도 일찍 문을 열었다. 특히 1911년에는 노비를 해방해 이웃 마을을 놀라게 했다.

마을에 흩어진 시인의 흔적들

주곡교회는 원래 별다른 장식이 없는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는데 몇 해 전에 붉은색 철근 구조물을 덧붙여 리모델링했다. 7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건축미가 돋보이는 교회당이 있다는 게 놀랍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지훈시공원이다. 시인 동상을 시작으로 대표작 승무파초우’, ‘낙화등 시인이 남긴 27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지훈문학관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시인의 미망인 김난희 여사가 쓴 글이다. 문학관 내부에는 시인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다. 어린 시절과 자아 확립기 그리고 일본의 식민정책에 통곡했던 이야기 등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청년 조지훈의 삶을 마주한다. 30대 중반에 착용했던 검은색 모자와 가죽장갑, 40대에 사용했던 부채, 그리고 세상을 뜨기 6~7년 전부터 애용했다는 담배 파이프와 안경도 있다.

월록서당은 조지훈 시인이 한문을 배운 곳이다. 그 오른쪽으로 주실마을 숲이 있다. 이 숲은 2008년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수상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을 주실쑤라 부른다. 주실쑤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이다.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어 오늘날까지 가꾸어 오고 있다. 1982년 조지훈 시인의 문하생들이 시비를 건립하면서 시인의 숲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주실마을은 청송·영양·봉화·영월 등 4개 군의 마을과 산, 숲에 난 걷기 좋은 길을 이은 외씨버선길’ 6코스 조지훈문학길에 속한다.

마을에서 자동차로 20여 분을 달리면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바위를 깎아 세운 듯한 바위가 나온다. 그 앞에 흐르는 강은 남이포라 부른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어 함께 돌아보면 좋다. 선바위관광지와 가까운 곳에 조선시대에 지은 연못과 정원이 아름다운 서석지가 있다.

여행정보

문의: 지훈문학관 054-682-7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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