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다시 ‘첨예한 갈등’

최근 유통가의 화두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폐지. 윤석열 대통령의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유통정책 중 하나로 규제완화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무조정실은 지난 8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첫 번째 규제심판회의를 열어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해 논의하며 의무휴업 폐지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두고 10년 만에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통가는 10년 전의 모습의 재탕이라 할 수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의무휴업은 지난 2012년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현재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논란은 지속돼 왔다. 10년만에 의무휴업 폐지논란이 재점화 된 것이다.

이에 유통업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간의 엇갈린 의견으로 유통업계의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논란의 해결방안 모색이 어렵다는 점이다.

대형마트, 마트노조,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 등이 최근 불거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관련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정부 역시 이에 대한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한 정확인 입장 표명을 망설이고 있다. 정책기조는 규제완화 쪽으로 힘이 실리고 있지만 소상공인들의 반발에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대형마트는 불공정한 규제를 지속해온 것이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반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생존권 보호 측면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며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마트 노조 측 역시 노동자 휴식권 보장 차원에서 의무 휴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의무휴업첫 번째 규제심판회의 상정

지난 2012년 도입 후 10년 간 시행하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가 4일 규제심판대에 올랐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쟁점으로 떠오른 건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첫 번째 규제심판회의 안건으로 선정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지난 721일부터 열흘간 총 10개 안건에 대한 국민제안 온라인 국민투표를 실시해 이중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 중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좋아요’ 577000여개를 받아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에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은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오후 2시 세종청사에서 첫 번째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한 이해 관계자들의 찬반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소비자 선택권 강화와 소상공인 보호라는 상반된 입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국민의 관심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첫 규제심판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규제 개선의 필요성을,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및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규제 존속 필요성을 강조하며 맞섰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 육성 의무휴업 규제 효과성 온라인 배송 허용 필요성 지역 특성을 고려한 의무휴업 규제의 필요성 등이 논의됐다.

첫 회의인 만큼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및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회의에 참석해 부처의 입장을 밝혔다.

참석자들은 이후 회의를 통해 숙의 과정을 거치고 상생 방안을 모색할 것을 동의했다. 또 이날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를 두 번째 회의 전에 함께 공유해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위원장을 맡은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사안을 담당하는 규제심판 회의는 대형유통업체와 소상공인의 상생협의체라고 불릴 수 있도록 운영하겠다며 운영 방침을 설명했다.

국무조정실은 대형마트와 소상공인들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대안에 합의할 때까지 회의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회의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오늘내일 당장 개선 여부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규제심판회의는 타협의 장이며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개선도 모두 원하는 방안을 도출할 때까지 충분히 듣고 또 듣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5일부터 18일까지 온라인 토론을 진행한다. 온라인토론은 규제정보포털(www.better.go.kr)규제심판 국민참여페이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토론은 댓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국무조정실은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타인의 글에 댓글을 달며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두 번째 회의는 온라인 토론이 종료된 오는 24일 개최될 예정이다.

소송까지 갔던 대형마트 규제완화 적극 환영

과거 소송까지 불사했던 대형마트는 이번 정부가 주도하는 의무휴업 폐지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2년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6개사는 해당 법이 위법이라며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바 있다. 이 소송은 1심 합법, 2심 위법 판결을 거쳐 2015년 대법원에서 합법으로 결론 났다. 대형마트들이 이처럼 의무휴업 폐지를 반기는 것은 매출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휴업일인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 영업 제한이 풀리면 상당한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NH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의무휴업이 폐지되면 이마트 할인점은 연간 2500억원, 롯데마트는 연간 3480억원의 매출 증가가 예상된다.따라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측은 국무조정실과의 면담에서 규제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주말 온라인 새벽 배송 허용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가맹점주인 SSM(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완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등도 함께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 “의무휴업은 생존 위한 마지노선

이번 의무휴업 폐지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소상공인 측은 강한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폐지는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의무휴업 폐지를 저지하는 것이 곧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에 맞서 소상공인들의 집단행동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상공인연합회,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소상공인연합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한다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 움직임도 당장 멈추라며 반발했다.

이들 단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형유통업계는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렸음에도 온라인 시장과 불평등한 경쟁을 운운하고 있다대형마트는 변화한 유통환경에서 피해자인 양 위장하고,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의 목적이 이미 퇴색한 것처럼 논란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골목상권과 동네 슈퍼마켓, 전통시장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자 울타리라며 사회적 안전망을 팽개치면 골목상권·전통시장의 붕괴와 유통질서의 파괴를 초래해 미래에는 사회 공동체 구성원에게 더 큰 불편과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일방적 의무휴업일 폐지가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바로 세우기 위한 상생의 방안을 제시하라고 강조했다.

전국 전통시장, 폐지반대 집단행동 예고

소상공인 중에서도 전국의 전통시장은 의무휴업 폐지 논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연합하여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전국상인연합회는 지난 3“8일부터 12일 전국 1947개 전통시장에 마트 휴업 폐지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상인연합회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코로나19 피해에서 회복하지도 못한 시점에서 마트 휴업 폐지가 논의되는 점이 속상하다마트 입장도 이해하지만, 적어도 소상공인들의 자립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을 때 규제를 서서히 완화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종로구에 있는 한 전통시장에서 음식점을 하는 하 모씨는 많이들 마트 휴무가 재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하지만 몸소 체험해 보지 않아서 하는 이야기라며 “15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영세업자들은 그 영향을 체감할 수 있다요즘 대형마트들은 가격경쟁으로 인해 제품의 가격도 낮추고 다양한 할인행사를 하기 때문에 굳이 재래시장을 찾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전통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젊은 층도 마트 휴뮤일에는 종종 전통시장을 찾는 경우가 있지만 휴무가 폐지되면 이 마저도 사라질까 우려된다항상 일정하지는 않지만 마트 휴무일에 매출이 50%이상 늘어날 때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경기도상인연합회에 소속된 전통시장·상점가 상인회는 총 120여 곳이 있는데 모든 상인이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상인연합회장 한 관계자는 이미 10년 넘게 해 오던 것을 굳이 왜 재논의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논의를 시작한다는 건 결국 강행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업기에 의무휴업이 폐지된다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전통시장 가운데 일부 상인들은 반대 현수막을 내거는 등 집단반발 움직임까지 보인다.

대구 서문시장 관문 2곳에는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폐지는 전통시장의 고통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인천에서는 전통시장 51곳 중 상당수가 조만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한 상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 소비자 의사는 배제?

이번 대형마트 의무휴뮤 폐지논란이 마트와 전통시장의 대립구도로 형성되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함에도 이런 노력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해당사자들의 충돌로 정작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5일부터 오는 18일까지 규제정보 포털 규제심판 국민 참여페이지에 온라인 토론장을 마련하고,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242차 규제심판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양측 모두 자신이 속한 그룹과 다른 의견을 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마트노조는 대형마트 업계와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유통 업계에선 노조원들을 중심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추진에 대해 오히려 반발해왔다. 마트 노조측은 마트 노동자들은 의무 휴업의 테두리에서 배제된 유통 노동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쟁취를 위해 의무 휴업 확대를 외치며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유통분과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항이 신설되기 전 수많은 마트 노동자들이 건강 위협에 시달리고, 휴일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었다노동자 휴식권을 위해 의무 휴업이 폐지될 게 아니라 4일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대형마트 뿐 아니라 백화점 등 모든 유통 매장 및 이커머스)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통시장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재래시장 업계와 이견을 보이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전통시장 상인 김모 씨는 이곳 상인들은 대형마트 휴일 영업이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솔직히 재래시장을 찾을 손님들은 마트가 휴무라 찾는다고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휴무일의 매출변화도 몸으로 실감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또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재래시장 한 상인은 마트 휴무일에도 인근에는 수많은 편의점과 매장들이 있어 사실상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다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재래시장 모두 결국 소비자의 선택으로 이용하는 것이지 강제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대형마트 의무휴업제의 존폐는 결국 국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역시도 신중한 입장인 상태다.

일각에선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정작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만큼 정부가 향후 어떤 정책과 중재의 묘를 보여줄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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