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 원래 이곳은 경복궁 후원이었다. 오랜 세월 권력의 중심이었다가 이제야 비로소 국민에게 돌아온 그 현장을 찾았다.

청와대, 국민 품으로 돌아오다

북악산을 병풍삼은 청와대. 이곳은 고려 숙종 때 이궁이 있던 곳으로 당시 숙종은 한양을 남경으로 삼았다. 이후 조선 건국과 함께 경복궁이 지어졌으며, 이궁이 있던 자리는 1426년 경복궁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되어 270년 동안 방치되다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은 1865(고종 2), 흥선대원군에 의해서다. 이때 함께 지은 건물이 경무대다. 하지만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경복궁과 후원 역시 수난을 겪었다. 후원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저를 지은 것이다. 그 관저는 해방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의 관저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 이곳을 경무대 부른 이유는 경복궁 후원에 있던 경무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 대통령의 뒤를 이은 윤보선 대통령은 당시 경무대의 기와가 파란색이라는 것에 착안해 청와대로 이름을 고쳤다. 현재 청와대 건물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신축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74년 만의 조우, 청와대

청와대 관람은 영빈관 앞 영빈문, 본관 앞 정문, 춘추관 앞 춘추문 세 곳에서 시작한다. 어느 곳으로 입장하든 경내를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 실내 관람은 따로 줄을 서야 한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본관은 한옥의 격조와 기품을 고스란히 지녔다. 궁궐의 처마 끝자락을 장식하는 잡상 11개가 하늘을 향하고, 팔작지붕은 위엄과 품격을 더 한다. 실내에 들면 충무실을 먼저 거쳐 간다. 대규모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외빈 만찬장으로 활용되는 다목적 공간이다. 이어 전혁림 화백의 작품 통영항이 인상적인 인왕실에 이른다. ‘한국적 추상화의 시조로 알려진 전 화백은 통영 출신 화가다. ‘통영항은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 화백이 그린 100(가로 7m, 세로 2.8m)짜리 대작이다. 2층에는 한국적인 분위기로 한껏 멋을 낸 외빈 접견실과 주인 없는 대통령 집무실, 역대 영부인 사진이 나란히 걸린 영부인 집무실 등이 있다.

인수문을 지나면 대통령 관저다. 대형 한옥 세 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자리한다. 그중 대통령 침실 건물에는 드레스룸, 가족용 식당과 침실, 미용실 등이 있다. 실내는 개방하지 않지만, 열린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관저 뒷길은 대통령이 산책을 즐기던 곳이다. 오운정과 미남불로 가는 산책로다. 1칸짜리 작은 정자 오운정은 경복궁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쓴 오운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오색구름이 펼쳐진 풍경이 선계와 같다라는 뜻이다. 오운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남불(보물 경주방형대좌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원래 경주에 있던 것을 일제가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 침류각을 마주한다.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1920년대에 지은 건물이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라는 뜻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유유자적한 풍류를 느낄 수 있다. 120여 종의 나무가 우거진 녹지원은 숲이 우거져 그늘이 넉넉하고 작은 연못이 있어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다. 녹지원을 지키는 건물은 상춘재다.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 전통 가옥을 소개하거나 의전행사, 비공식 회의 등을 진행하던 곳이다. 본관 옆 영빈관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나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용도 면에서 경복궁의 근정전을 닮았다. 춘추관은 기자회견 장소와 기자실로 쓰였다.

최근에 북악산 청와대 전망대가 개방되어 찾는 이가 많다. 등산로는 두 갈래다. 청와대 춘추관 뒷길로 올라가는 코스와 칠궁에서 출발하는 코스다. 두 코스 모두 전망대 아래 백악정에서 만나 하나로 이어진다. 전망대 앞에 서면 청와대와 경복궁은 물론이고 남산과 잠실, 강남 테헤란로까지 한눈에 담긴다.

여행정보

청와대 관람 문의: 인터넷 <청와대 국민 품으로>에서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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