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설산(雪山: 히말라야 산)에 공명(共命)이라는 새가 살았다. ‘목숨을 공유하는 새라는 뜻이다. 이 새는 꿩의 일종으로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는 둘이다. 각각의 이름은 가루다와 우파가루다인데, 이들은 교대로 잠을 잤다. 한 쪽이 자면 한쪽은 깨어 있어 자는 쪽을 지켜주면서 서로 의지해 살았다. 그런데 이 둘은 한 몸이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나서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았다.

이기심과 이타심

어느 날 가루다가 자는 동안 우파가루다는 향기가 좋은 열매를 발견하고 내가 이 열매를 먹어 뱃속에 들어가면 같이 배부를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자고 있는 가루다를 깨우지 않고 혼자 먹었다. 그런데 가루다가 한참 후에 일어나 자기가 먹지도 않았는데 포만감을 느끼자 억울하고 분노했다. 깨워서 같이 먹지 않고 혼자만 먹다니! 가루다는 우파가루다가 맛있는 것을 혼자 먹은 것을 괘씸하게 생각해 보복하기로 결심했다. 원한을 품은 가루다는 어느 날 우파가루다가 자고 있을 때 독버섯을 보고 복수할 생각으로 그것을 먹었다. 그러나 몸이 하나인 가루다와 우파가루다는 독이 온몸에 퍼져 함께 죽고 말았다. 서로가 꼴 보기 싫은 다른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맛있는 것을 독차지 하고 잘 먹고 잘살 것 같지만, 결국 다른 한쪽이 죽으면 자기도 죽고 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설화(說話)이다.

공명조와 비슷한 구조지만 반대되는 새가 비익조(比翼鳥)이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이 각각 하나의 눈과 날개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혼자서는 날 수가 없다. 반드시 암수가 함께 꼭 붙어 있을 때만 비로소 날 수 있는 전설상의 새다. 비익조는 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상징한다.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이 말은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白樂天)가 지은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에 나온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사실 국가나 사회나 기업이나 팀은 비익조와 같다.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한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E. Gardner) 박사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이다. 그는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이며, 그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고, 그의 이론에 근거한 연구소와 단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절대로 만능일 수 없다. 인간의 지능은 적어도 9가지로 분류되며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의 지능을 모두 우수하게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 즉 모는 인간은 한쪽의 눈과 한쪽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익조가 돼서 같이 힘을 합해 날아야 제대로 세상을 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사회 또는 우리 팀은 비익조라기보다는 공명조를 닮았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무엇이든지 두 편으로 갈라져 사생결단으로 싸운다. 머리는 둘이나 몸뚱이는 하나로 공생공사하는 운명공동체인데도, 마치 상대가 망하면 나는 더 잘살 거라고 착각하고 서로 해코지하려 든다. 가루다와 우파가루다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아싸비아(Asabiya)

심지어 어떤 조직이나 팀은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는 수십 수백 개이다. 모두 생각이 다른 것이다. 왜 생각이 다를까? 넓게 멀리 보지 못하고 바로 눈앞만 보기 때문이다. 마치 깜깜한 밤중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주변 환경은 전혀 보지 못하고 바로 앞길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정신을 도로에만 집중하고 다른 곳은 볼 여유가 없다. 그래야만 안전하게 주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도 많은데 안 보이는 것이다.

중세 이슬람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인 이븐 할둔(Ibn Khaldun)이 그의 저서 <역사서설>에서 사용한 중요한 개념이 <아싸비야>이다. 아싸비야(Asabiya)는 공동체의 결속과 사회적 연대 및 단결을 뜻하는 아랍어이다. 이븐 할둔은 아싸바야 개념을 인간사회의 근본적 유대관계이자 역사의 기본적 추동력으로 기술했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생태학 교수인 피터 터친(Peter Turchin) 박사는 그의 저서 <제국의 탄생>에서 제국의 흥망성쇠의 동인을 이븐 할둔의 '아싸비야(Asabiya)'에서 찾았다. 그는 아싸비야를 "사회집단이 집단적으로 일치된 해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이라 정의하고, 아싸비야는 역동적인 힘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증가할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위대한 제국들이 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되는지, 불평등과 폭력적인 경쟁, 신뢰 붕괴의 집단 분위기가 어떻게 조직을 병들게 하고 멸망의 길로 몰고 가는지를 수많은 역사적 사례와 자연과학의 분석도구를 통해 증명한다. 모든 인간집단은 몰락하기 전에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는데, 그걸 알아차리고 시정하지 못하면 결국 멸망하고 만다. 핵심적인 붕괴의 조짐은 이기적 행동의 만연과 파멸적 경쟁으로 인한 분열, 그로 인한 아싸비야의 붕괴다.

결국 국가이건 기업이건 팀이건 살벌한 경쟁이 아니라 아싸비야, 곧 제심합력 또는 대동단결이 생존과 발전의 길이며, 가루다와 우파가루다처럼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면 같이 죽고 만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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