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1년, 청렴문화 정착의 기틀마련…부패척결 취지 내 현실적 보완은 필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 금지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그간 자영업자, 소상공인, 농·축·수산 농가, 유통업계 등 광대한 산업군에 피해 및 부작용이 적지 않았지만 청렴문화 정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실제 청탁 금지법 시행이후 3~4차까지 이어지던 접대 문화는 사라지고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됐다. 또한 공직자들은 청탁 금지법을 핑계로 껄끄러운 청탁을 거절할 수 있게 됐고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됐다. 청탁 금지법 시행 1년, 변화된 사회상을 짚어 봤다.

대가성 입증 되지 않아도 적용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한국정서에 부정한 부패가 더해지자 감사와 정성을 담아야할 선물 안에는 부담감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부정청탁은 사회적인 문제로 번졌고 결국 나라가 나서게 됐다.

실제 이를 막기 위해 지난해 9월28일 청탁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법안은 당초 공직자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겠다는 취지로 제안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청탁 금지법은 ▲금품 수수 금지 ▲부정청탁 금지 ▲외부강의 수수료 상한 등 크게 세 가지 로 구성됐다.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법안 대상자들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형사처벌 된다. 또 직무 관련자에게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받은 금액 2∼5배의 해당하는 과태료로 물어야 한다.

다만 원활한 직무 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의 목적으로 법안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의 상한액을 설정해 용이하게 했다. 식사·다과·주류·음료 등 음식물은 3만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은 5만원, 축의금·조의금 등 부조금과 화환·조화를 포함한 경조사비는 10만원이 기준이다. 물론 금품을 받은 대상자 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을 요청한 사람에게도, 대상자들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에도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또한 법안은 누구나 직접 또는 3자를 통해서 대상자들에게 부정청탁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정청탁 대상 직무는 인·허가, 인사 개입, 수상·포상 선정, 학교 입학·성적 처리 등 총 14가지로 구분했다. 다만 공개적으로 요구하거나 공익적 목적으로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등 5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청탁의 예외 사유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외부강의 수수료 상한액도 정했다. 장관급 이상은 시간당 50만원, 차관급과 공직유관단체 기관장은 40만원, 4급 이상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원은 30만원, 5급 이하와 공직유관단체 직원은 20만원이며 사립학교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의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액은 시간당 100만원이다.

외식업, 농·축·수산 농가, 화훼업 직격타

청탁 금지법이 본격 출범하자 다양한 산업부분에서 진통이 일었다. 받지 말아야 할 사람, 주지 말아야 할 사람, 선물가격까지 규정했으니 소비위축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 청탁 금지법 출범 당시 한국경제연구원은 음식점과 선물수요가 연간 6조5000억원 감소하고 이로 인한 파급효과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이 11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특히 선물과 식사 자리가 눈에 띄게 줄면서 외식업, 농·축·수산 농가, 화훼업, 유통업계 등이 직격타를 입었다. 시행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안이 필요한 배경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청탁 금지법 영향 업종(농·수·축산, 화훼업, 외식업) 관계자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일반음식점 관계자 67%, 농·수·축산, 화훼업 79%가 ‘업계 전반에 청탁 금지법으로 매출 감소가 있었다’고 응답하며 청탁 금지법으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청탁 금지법은 외식업 45.7%에게 휴·폐업 및 업종전환을 고려하는 법으로 작용했다. 지난 9월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청탁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420개 업체를 대상으로 ‘국내 외식업 영향조사’를 실시, 발표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청탁 금지법 시행 1년이 지난 최근에는 외식업체 10곳 중 6곳의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출감소율은 22.2%다. 매출이 줄었다고 대답한 외식업체는 한식당이 68.8%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일식 66.7%, 중식 64.3%로 업종별 편차는 크지 않았다. 이에 외식업체들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종업원 감원(22.9%)’, ‘전일제 종업원의 시간제 전환(11.7%)’, ‘영업일 혹은 영업시간 단축(12.5%)’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메뉴 가격 조정(20.6%)’, ‘식재료 변경(7.3%)’을 한 외식업체도 많았다. 무엇보다 전체 외식업체의 45.7%가 향후 ‘휴·폐업 및 업종전환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해 법 보안의 시급함을 알렸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청탁 금지법 대응책은 대체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취해진 미봉책으로 이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경우 매출감소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의 영업 상태가 지속된다면 상당수 업체들이 휴·폐업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청탁 금지법의 최대 피해 산업으로 불리는 화훼업는 외식업체보다 경영난이 극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1~5월 화원협회 소속 1200개 점포를 조사한 결과 꽃 소매 거래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7%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 9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청탁 금지법 시행 1년 중소기업·소상공인 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훼업 10명 중 4명 이상인 44.7%가 폐업을 고려중이며 55.3%는 사업을 축소했다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외식업체는 반찬 수를 줄이거나 재료비, 인건비를 줄여 임의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지만 화훼업은 가격 폭을 쉽게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가 불가피했다는 진단이다.

이와 함께 농·수·축산물 판매액 역시 청탁 금지법 시행 1년간 최대 2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한우의 경우 도축량이(5.2%)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우 1등급 평균 도매가격(1㎏)은 시행 전 1만8265원에서 시행 후 1만6535원으로 9.5% 하락했다. 더불어 전국 인삼농협의 지난 설 판매 실적은 전년보다 23.3% 줄었으며 과일 거래액도 전년 1분기 보다 7.1% 감소했다.

청탁 금지법 시행이후 처음으로 추석명절을 보낸 유통업계는 엇갈린 성적을 기록했다. 긴 연휴 덕에 사전 선물세트 판매 효과를 제대로 본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매출이 오른 반면 재래시장은 추석 대목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올 추석 연휴기간 동안 매출은 전년 대비 23.3% 대폭 신장 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전년대비 9.1% 매출이 뛰었고, 현대백화점 역시 연휴 기간 7.0% 매출이 늘었다. 청탁 금지법 시행 이후 대세가 된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주력으로 내세운 대형마트도 매출이 올랐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추석 선물세트 매출은 각각 2.2%, 2.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백화점 관계자는 “추석 선물 판매 실적이 지난해보다 50~60%가량 늘었다”며 “청탁 금지법 초기에는 모든 선물의 상한선을 5만원에 맞추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법 적용 대상자를 명확히 구분해 상한을 지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유통업계는 지난 설 명절 당시 청탁 금지법 시행 초기 적용대상을 놓고 벌어졌던 대혼란이 줄어들면서 선물수요가 다시 급증한 것으로 분석했다.

재래시장 등 소상공인은 명절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소상공인 등은 청탁 금지법 시행 전후 월평균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실제 소상공인연합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 2월 발표한 ‘청탁 금지법 시행 전후 소상공인 경영실태 1차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직후 약 2474만원이었던 월평균 매출액은 3개월 지나자 약 2351만원으로 5% 하락했다. 특히 소상공인의 경우 7.9%나 감소했다. 영세 소상공인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6월 발표한 ‘청탁 금지법 시행 전후 소상공인 경영실태 2차 조사결과보고서’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법 시행 6개월이 지난 올 3월에는 월평균 매출액이 8.4% 추가 감소했다.

효과있지만 보완은 필요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청탁 금지법 시행 후 사회 곳곳에서 더치페이 문화 확산, 각종 업무의 투명성 증대 등 유의미한 변화도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 한국사회학회가 일반인 1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9.5%가 ‘청탁 금지법에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한국교총은 전국 초·중·고교 교사와 대학 교수, 교육전문직 등 13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청탁 금지법이 학교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2%는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했다. ‘교직사회의 청렴의식이 상승했다’는 응답이 37%, ‘부정청탁과 금품수수가 근절되고 학교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응답이 15%로 나타났다.

더불어 기업 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500대 기업의 올해 상반기 접대비가 지난해 동기보다 15.1%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은 직원 및 협력회사를 대상으로 청탁 금지법 시행 후 의식·행동변화를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전 직원 응답자(8976명, 총 2만1082명)의 91.6%가 ‘청탁 금지법 이 우리사회의 청렴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97.5%가 ‘회사 업무처리 시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협력회사 종사자 응답자(2229명)의 77%가 ‘청탁 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85.3%가 ‘법 시행 이후 의식 및 행동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답하는 등 청탁 금지법 이후의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탁 금지법이 지난 1년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건 분명하다. 하지만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맞는 보완책 마련은 시급하다. 먼저 접대 및 식사비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의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회에서도 식사 및 선물경조사비 상한을 ‘10·10·5’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올라온 상태이며 지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원회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도 같은 지적이 있었다. 실제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감에서 “청탁 금지법 시행 후 수백만 농·수·축산, 화훼농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3·5·10이라는 숫자가 청탁금지와 부패방지에 효과적이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법의 취지에 맞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내에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이 법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가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보완작업은 정부로서는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법규 위반 신고 건수에 비해 처벌 건수가 미미하다는 비판이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년간 신고·접수된 위반사례가 3000건 정도인데 처벌된 건수는 1%에 불과하다”며 “처벌과 신고접수 건에 대한 권익위의 자체 종결 처리 기준 등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학영 위원은 “제3자 신고를 하려면 내부고발이나 흥신소를 통할 수밖에 없다”며 “현장을 목격하더라도 이를 신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질타했다.

실제 청탁 금지법 시행 이후 10개월간 신고 접수된 4052건이다. 이 중 실제 제재까지 이어진 건은 40건에 불과했다. 과태료 부과 요청이나 수사 의뢰 등으로 이어진 건도 121건에 그쳤다.

청탁 금지법이 시행 된지도 1년이 지났다. 청렴한 사회문화 정착의 기틀은 마련됐다. 하지만 서민경제라는 출혈은 아직도 붉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당초 취지를 유지하고 특정분야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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