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신년 들어 유통업계가 정부의 규제리스크 증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통과된 데다, 금융위원회는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발표해 소매심리 위축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어떡해…대형마트 ‘곤란해졌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의 영업시간 축소를 골자로 하는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30일 본회의를 열어 재석의원 185명 중 찬성 174명, 반대 4명, 기권 7명으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로 제안하고 의무휴업일을 매월 1일 이상 지정토록 했다.
국회는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동반성장위원회에 사업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재석 의원 193명 중 191명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이처럼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본격 시행에 따른 업계 판도가 주목된다. 특히 대형마트 3사 중 홈플러스가 사면초가에 몰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유통법 개정안이 조례로 시행되면 대형마트들은 늦어도 오후 11시에 문을 닫아야 하고 매달 하루씩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데, 업계에 따르면 24시간 운영되는 대형마트 점포는 이마트는 10개 점포에 불과하고 롯데마트는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

반면 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24시간 영업 점포수가 대형마트 중 70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 중 32개 등 전체 점포수의 36%가 24시간 영업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3일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협회장으로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유통법 개정안을 무효화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작년 연말에 법안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긴밀하게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며, 24시간 운영을 중단할 시 입을 손실규모에 대해서도 아직 정확히 산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또한 홈플러스가 한편으로는 유통법 개정안에 대비해 편의점 진출로 돌파구를 미리 마련해 놓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21일 일종의 편의점으로 보이는 ‘365플러스’ 1호점인 서울 대치점을 열었다. 따라서 이후 홈플러스가 줄기차게 부인해 왔던 가맹형 편의점 사업을 인정하고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미리 계산한 전략이 아니냐는 업계 분석이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업계에선 유통산업발전법 등 대형마트와 SSM 규제법을 피하기 위해 이승한 회장이 편의점 사업에 진출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대치점처럼 농축수산물의 비중을 높이고 저가 공세를 펼칠 경우, 표면적으로는 편의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SSM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이어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최승재 사무총장은 “SSM과 달리 편의점 가맹사업이 유통산업발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점에 착안해 변형된 SSM을 하려는 것”이라며 “이 법의 취지가 중소 상인과 더불어 살라는 것인데 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중소상인, 자정 이후 영업제한 의미 없다
실제로 중소상인들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처리된 중소상인 보호 법안 개정이 생색내기 수준에 그친데다 관련 예산안마저 무산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서 통과한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대기업 슈퍼(SSM)에 대해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월 1일 이상 2일 이내 의무 휴업일을 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경우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 기존에도 자정 이후 영업을 하지 않아왔다는 점에서 생색내기라는 말이 이해된다.
부산 지역의 경우 대형마트 3사가 운영하는 매장 25개 중 자정 이후 영업을 하는 곳은 홈플러스 11개 중 7개(동래점은 오전 2시까지), 이마트 7개 중 2개 등 9개뿐이다. 나머지 매장의 경우 대부분 오후 11시나 12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어 '골목상권과의 상생을 위한 영업시간 제한'이라는 취지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관계자는 “일례로 사하구의 한 SSM은 사업조정 결과 오후 10시까지 영업하는데도 인근의 동네 수퍼마켓 두세 곳이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을 위기에 처했다”며 “법사위 심의를 거치면서 영업 제한 시간이 오후 10시 이후, 오후 11시 이후로 점점 후퇴하다 결국 대기업의 논리에 밀려 하나마나한 수준의 ‘누더기 개정안’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심의 과정에서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51% 이상인 대규모 점포’라는 명목으로 농협하나로클럽(마트)이 영업시간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고,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영업품목 제한’과 ‘허가제 도입’이 누락된 것도 비난을 사고 있다. 농협하나로클럽은 서울 창동점, 양재점 등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국회가 지난 30일 함께 처리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도 반쪽 입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법적 근거를 명시하면서 △대기업의 출자로 운영되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내에 동반성장위를 두게 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사업이양을 할 경우에도 중기청장이 이행명령이 아닌 ‘권고’만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공동구매를 통해 중소상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통합물류센터 시범사업 예산 240억 원 또한 여야가 합의해 예결산위원회를 통과했음에도 계수조정위원회에서 삭제돼 결국 무산됐다.

신용카드 발급 강화…홈쇼핑 타격
‘만 20세 이상, 가처분소득이 있을 것, 신용등급 6등급 이상.’ 신용카드 발급 기준이 강화되고 카드사들은 카드를 발급할 때 회원들과 약속한 내용을 1년 안에 못 바꾼다. 또 ‘외상 거래’식으로 결제되는 신용카드 관행을 막기 위해 직불형 카드 활성화 대책도 마련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6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직불형 카드 사용을 늘리는 방안이 대거 포함됐다.

미성년자나 신용등급 7등급 이하, 결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도록 했다. 발급받더라도 신용카드 이용한도는 결제능력, 신용도, 이용실적 등이 감안된다. 결제 능력은 부채 원리금보다 소득이 많아야 한다는 것으로 정확한 소득을 증명하기 어려우면 국민연금 납부 여부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전업주부 등은 배우자의 소득으로 따진다. 반면 직불형 카드는 예금계좌만 있으면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상반기 유럽발 금융 위기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이같은 방침은 당장 홈쇼핑사들이 실적 악화를 걱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신용카드 할부결제 비중이 높은 홈쇼핑업계는 매출에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홈쇼핑업계는 5만원 이상의 거의 모든 상품에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제공하면서 고객들의 신용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힘을 싣고 있는 결제수단인 체크카드로는 고객들이 할부 결제를 할 수 없어 매출 감소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홈쇼핑업계의 신용카드 결제비중은 80% 수준으로 전체 업종 평균인 61%를 훨씬 상회한다. 또 이중 소비자가 할부로 물건을 구매하는 비율은 50%가 넘어 다른 업종들(20.7%)보다 배 이상 높다. 홈쇼핑 관계자는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번 조치로 낮아진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결국 (홈쇼핑)업계의 매출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규제 강화, 신용카드사 ‘속으로 웃는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에 당황하고 있는 유통업계와 대비해 정작 신한카드 등 선발카드사들은 ‘나쁠 것도 없다’고 반응하고 있다. 겉으로는 수익기반이 줄어들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속내는 현재의 시장 지배구조가 위협받을 소지가 적어진데다 이참에 군살빼기 등 체질 개선작업에 주력할 시간을 벌었다는 계산이 감지된다.

신용카드 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신용카드 종합대책)’으로 구체화된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가 오히려 개별 신용카드사들에게 현재의 시장지배력을 굳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업 카드사 한 임원은 “공격적인 마케팅은 후발주자들의 주요 수단”이라며 “규제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시장 점유율의 변화 가능성이 한층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신용카드 종합대책은 신용카드 이용을 권유하는 영업행위 제한과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 카드사에 대한 금감원 특별감사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규제범위를 마케팅 전반으로 확대한 것으로 카드사들의 신규 회원 확보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미 구축돼 있는 카드사별 격차가 그대로 굳혀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국내 6개 전업카드사의 3분기 카드이용실적 기준 시장점유율은 신한카드 21.9%, KB국민 13.1%, 삼성·현대 12.7%, 롯데 8.4%, 하나SK카드 3.7%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선발·후발사간 또는 전년도 실적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규제 기준이 총수익 대비 마케팅 비용이 일정수준을 초과하는 회사를 무리한 외형위주의 경영 가능성이 있는 회사로 간주한다는 것이어서 ‘탄력적 운용’의 폭은 제한적이다.

또 정부 규제에 따른 업계 저성장 전망은 마케팅 담당 임원들에게 성장률 상향에 대한 압박을 줄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을 고민했던 담당자들이 올해는 물가성장률 정도의 성장을 고민하게 됐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사들은 마케팅 비용도 상향하지 않을 예정이다. 지난해 말 ‘숫자’를 개별 카드의 이름으로 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라인업한 삼성카드가 대표적이다.

삼성카드 마케팅 담당 임원은 “숫자 브랜드를 새로 런칭했지만 (올해) 마케팅 비용을 (전년에 비해) 늘리지는 않을 ”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사들은 올해를 기존 조직의 군살을 뺄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말에 비공개적으로 150여명에 대한 명예퇴직을 받았고, KB국민카드는 사업 재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은“과거 호황기 때부터 해오던 고비용 저효과 사업을 재조정하고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축소하거나 관습적으로 해 온 다소 무절제한 비용지출 항목 등은 축소 운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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