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판법 TF팀 운용…절충안 마련 가능성은 불투명

방문판매법 개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출된 5건의 방문판매법 개정안이 다단계판매 정의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정위에서 절충안 마련을 위한 TF팀이 구성돼 업계 안팎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4년여 동안 다수의 방판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 온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방판 업체들의 일부 주장을 수용해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일부에선 공정위가 한 발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와 방판 업체들 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인해 사실상 합의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어서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절충안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번 TF팀 운용 결과 끝내 절충안 마련에 실패하거나 미등록 다단계판매 업체 척결이라는 본래 취지에 소홀해진 절충안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 부위원장,“ 절충안 마련하겠다” 먼저 밝혀

지난 6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방문판매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절충안을 마련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법안심사소위에서는 현재 계류 중인 47건의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법률안 중 4건의 방문판매법 개정안(조원진의원 안은 당시 국회에 발의 됐으나 정무위에 상정되지 않은 상태였음)을 가장 쟁점이 되는 법안으로 선정했다. 이에 국회 정무위는 공정위에게 각계의 의견을 조정한 절충안을 8월말까지 보고하도록 지시했으며, 공정위는 이에 따라 절충 안 마련을 위한 TF팀을 구성해 운용하고 있다.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방판법 개정안의 처리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방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연말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다단계판매 정의를 둘러싼 각 개정안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논의는 계속 미뤄져 왔었다. 따라서 이번 9월 국회에서 본격 논의하기에 앞서 이해 당사자 간의 입장을 사전에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 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공정위의 입장변화다.

6월 24일 당시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문강주 전문위원이 9월 정기국회에서 즉각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각 개정안들의 입장을 조율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어 손인옥 공정위 부위원장이 국회가 공정위에게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손 부위원장은 “현행대로 하면 실제로는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더라도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고 판매원만 모집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법망을 피해갈 여지가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을 해서 ‘소비자’ 요건을 삭제해야 되는데, ‘소비자’요건을 그냥 삭제해 버리면 대형 방판 업체들도 다단계로 들어오게 되므로 우선 절충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공정위가 대형 업체들을 포함한 대다수 방판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방판 업체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주목된다.

전문위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 제출된 방판법 개정안들이 다단계판매 정의에 있어서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위 측에 정부안 그대로 통과되기는 어렵겠다는 뜻을 알렸다”며 “이에 공정위에서 빠른 법 개정을 위해 절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해 손 부위원장의 발언이 사전에 정무위 전문위원실과의 협의를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최근까지 후원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다수의 방판 업체들을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대형 방판 업체에게 미등록 다단계판매 영업 혐의로 시정명령을 내린 이후 업체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법정 싸움을 이어갔으며, 법원에서 소비자가 판매원이 된 경우만 다단계판매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자 법 개정에서 소비자 항목을 삭제해 업체들이 법망을 피해갈 여지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4월에는 현행 방판법 시행령 제4조 3호 소비자 범위에서 ‘다단계판매원이 되고자 다단계판매업자로부터 재화 등을 최초로 구매하는 자’ 또한 소비자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메리케이코리아와 씨엔에이치이노이브를 미등록 다단계판매 행위로 고발 및 시정명령 조치했다. 이는 설사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이들 업체를 다단계판매로 포섭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을 낳게 했다.

이처럼 지난 2007년 이후 4년여 간 강한 의지를 보이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공정위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것은 의아한 일이다. 업체들에 대한 시정명령과 법 개정 작업 등 공정위가 그간 진행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성환 공정위 특수거래과장은 공정위의 입장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며 손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 과장은 “부위원장의 발언은 계속해서 법 개정 작업이 지연됨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나, 공정위 내부에서는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한다는 합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진 바 없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방판법 TF팀이 구성됨에 따라 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고 의견이 합당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에 따른 절충안이 나올 수도 있지만, 공정위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며 “절충안을 만든다, 안 만든다는 입장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며, TF팀 운용 결과에 따라 절충안은 만들지 않고 의견만 취합해 정무위에 보고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정위가 그간 방판 업계에 대해 취해왔던 입장을 고려한다면, 개정안 중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의 수정 가능성을 보인 것 자체를 커다란 입장 변화로 보는 것에 무리 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8일부터 정무위 지시에 따라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한 TF팀을 구성해 운용 중이다. 이번 방판법 TF팀은 업계와 법조계, 시민단체, 관련기관 등 각계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됐다. 한철수 공정위 소비자정책국장, 김성환 공정위 특수거래과장, 어원경 한국직접판매협회 전무, 김장환 한국암웨이 인사총무담당 상무, 안일동 LG생활건강 대외협력본부장, 박찬호 한국법제연구원 글로벌법제연구센터장, 서혜숙 법무법인 KCL 변호사, 문정신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회 팀장, 임은경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기획 3팀
장, 박영진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TF팀은 매주 1회씩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로 논의되는 부분은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이다. 현재 정부와 시민단체는 미등록 다단계판매 업체를 척결하기 위해 다단계판매 정의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방판 업체들은 현행법상 하자가 없는 영업방식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TF팀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미등록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는 업체들을 법의 테두리로 포섭하는 한편, 현재 특별한 소비자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대형 방판 업체들의 영업권은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방판 입장차 확실…효과적인 TF팀 운용 어려울 듯

그러나 다단계판매 정의에 있어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정위와 방판 업계의 입장 차는 방판에서의 후원수당 인정 여부 자체에서 발생한다. 때문에 이 두 주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합의점이란 다단계판매 정의만 놓고 이야기할 경우 존재할 수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합의를 위해서는 둘 중 한 쪽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방판 업계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포기한다면 여태까지 벌여왔던 싸움을 수포로 돌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공정위가 방판 업계의 입장을 들어주게 될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대로 그간 펼쳐왔던 정책방향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인하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둘 중 어느 한 쪽도 양보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구성된 TF팀은 양 측 주장이 평행선을 이룬 끝에 끝내 절충안 마련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TF팀에서 절충안 마련에 실패할 경우, 공정위가 먼저 절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해놓고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 또한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나온 공정위 부위원장의 발언과 정책 담당자인 공정위 특수거래과장의 이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남에 따라 공정위의 공식 입장이 제대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또 다른 정책실패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만일 합의점 도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정위가 방판 업계의 입장을 들어준 형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방판 업계는 대법원으로부터 현행법 상 다단계판매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또한 방판 업계의 목적은 방판법 개정 없이 현재대로 영업을 진행하는 것 하나다. 공정위 안으로 법이 개정될 경우 얻을 게 전혀 없는 것이다.

반면 공정위의 법 개정 목적은 법망을 피해 미등록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며 소비자피해를 일으키는 불법 업체들을 단속하는 것이다. 대형 업체들을 굳이 다단계판매로 포섭하지 않더라도 이를 위한 다른 방안을 생각해볼 수는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법 개정이 지연되는 사이 소비자 피해는 계속될 것으로 추정되
면서 이에 대한 비판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때문에 공정위로서는 내키지 않더라도 다단계판매 정의에서는 방판 업계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다른 추가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공정위가 방판 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절충안은 지난 달 조원진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과 흡사한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상돈 전 의원 안과 조원진 의원안 모두 후원수당 1단계는 방문판매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방판 업계는 박 전 의원 안에 대해서는 방판 업계에 새로 적용되는 규제 수준이 높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원경 한국직접판매협회 전무는 “박상돈 전 의원 안은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가입이나 후원수당 제한 등 방판 업계에 대한 부담스러운 규제가 포함되어 있어 업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며 “정보공개 의무화나 업자와 판매원에 대한 방판법 및 소비자 보호 관련 교육 등 조원진 의원 안에서 제시한 수준의 규제는 방판 업계에서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방판업계에서는 다단계판매 정의가 자신들의 뜻대로 가더라도 방판 업계에 적용될 규제 수준에 대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공정위가 갑작스럽게 몇 년 간 고수해온 입장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공정위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규제를 고민할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또한 8월말까지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어 이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김성환 과장 역시 이에 대해 “TF팀에서 방판법을 전반적으로 살피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에 대한 절충안을 만드는 것이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규제 도입 등 부차적인 부분은 그 이후의 문제이며, 시간 관계상 자세히 논의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가 방판 업계의 입장에 맞춰 다단계판매를 정의한 절충안을 내놓을 경우, 그 대신 미등록 불법 업체 척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공정위가 방판 업계에 대해 일방적으로 특정한 규제를 제시한다면 공정위와 방판 업계는 새로운 논쟁에 들어설 수밖에 없으며, 방판 업계에서 수용할 수 있는 규제를 먼저 제시한다면 공정위에서는 이것이 본래 공정위 안이 갖고 있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수준인지 충분하게 고민해야한다. 만약 공정위가 다단계판매 정의 부분을 양보하고도 이후 미등록 불법 업체 척결을 위한 효과적인 제도 마련에 실패할 경우에는 방판법 TF팀 운용이 빠른 법안 처리에만 목을 맨 졸속행정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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