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불황형 소비’…온라인 성장·오프라인은 역성장

2023년 유통업계는 그 어느때보다 혼돈스러운 한해를 보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또한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 등 대외적인 요인과 더불어 고물가로 인한 소비침체 등 대내적인 불안요인이 겹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한 한해였다.

특히 2023년 유통업계는 경기불황과 고물가로 인한 소비침체에 따른 짠물 소비가 확산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른바 불황형 소비가 대세를 이루면서 온라인은 고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오프라인은 역성장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등 6대 광역시 유통기업 250개 사를 대상으로 ‘2023년 유통업계 10대 이슈를 조사한 결과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1위로 꼽혔다.

짠소비 확산, 온라인쇼핑 일상화, 수익성 악화, 배송전쟁, 쿠팡 흑자전환, 생존을 위한 오프라인 새단장 바람, 대규모 할인행사 개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고물가·고금리·고유가 등 ‘3()’ 현상으로 인해 온·오프라인의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해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보복 소비열풍으로 백화점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소비자들이 짠물 소비에 나서면서 실적이 뒷걸음질쳤다.

백화점, 3사 영업이익 모두 감소팝업스토어로 불황 극복

올해 3분기 기준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백화점 3사의 영업이익은 모두 감소했다. 올해 고물가와 소비침체를 겪은 데다가 역기저까지 맞이해 영업이익 악화 등으로 실적 부진을 겪은 것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 증가와 고수익 품목인 의류 매출부진 등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보복소비로 화황을 누렸던 명품 매출이 2023년 감소한 것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월 명품 매출은 -3.1%를 기록하면서 8(-7.6%), 9(-3.5%)에 이어 3개월 연속 역성장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이 두 달 이상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152월 이후 86개월 만이다.

이에 올해 백화점 업계는 프리미엄과 저가로 양극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소비자 역시 프리미엄 상품을 구입하며 가심비를 충족하는 고객과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해 가성비를 충족하는 고객으로 나뉘었다는 평가다. 고물가 속에 소비 패턴이 양극화되면서 백화점 업계가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백화점이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의미하는 가심비를 공략하는 프리미엄 상품 마케팅과 MZ세대를 노리는 전략은 어느정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가심비 마케팅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이 만족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가격 지불은 감수한다는 심리를 활용한 것으로, 명절 등 많지 않은 소비 기회에 소비자들이 만족스러운 상품 구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특히 추석 선물세트 판매 당시 백화점은 10만원 이상의 고가 선물세트 판매량 증가로 그간 매출 부진을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백화점이 적극적으로 도입한 팝업스토어도 MZ소비층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당초 기간한정형 마케팅의 활용 수단이던 팝업스토어가 희소성·체험형 마케팅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 소비 패턴과 맞물리며 소비자가 백화점을 방문하도록 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실제 더현대 서울이 2021년 개점 후 2년간 연 팝업스토어는 300여개, 다녀간 고객 수는 460만명에 달한다. 지난 2일에는 올해 누적 매출(11~122) 141억원을 달성하면서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 연 매출 1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롯데백화점도 올해 잠실점에 200여개, 신세계백화점도 강남점에 100여개의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지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이 명품 매출이다. 명품은 백화점 매출의 대부분을 견인해왔으나, 올해 들어 급격히 줄어들어 역신장을 했다. 물가 상승으로 인건비 등 고정비가 상승하는데 명품 매출이 지탱해주지 못하자 백화점 영업이익도 곤두박질쳤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추가 출점 대신 리뉴얼 주력

대형마트는 그동안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타 오프라인 유통과 경쟁해 왔다. 올해 역시 같은 기조를 유지하며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올해 첫 번째 키워드는 리뉴얼이었다는 평가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신규 출점만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게 되자 기존 점포를 리뉴얼하며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특히 고객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쳤다. 고물가 상황에 맞춰 초저가 마케팅을 진행하며 소비자를 잡기 위한 출혈 경쟁을 벌였다. MZ세대를 고려한 체험형 매장을 대폭 늘렸다.

이마트는 올해 850억원을 투입해 노후된 점포 10여곳을 쇼핑몰 형태로 바꾸는 리뉴얼을 추진 중이다. 홈플러스는 최근 인천 연수점을 메가푸드마켓 2.0으로 리뉴얼 오픈했다. 이밖에 영통점 등 9개 점포도 리뉴얼 오픈한 바 있다.

롯데마트는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2층 매장의 85%를 그로서리 전문 매장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9월 새단장을 마친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은 오픈 이후 37일간 매장 방문 고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40%, 매출은 75% 가량 증가했다.

올해 이런 노력속에서 대형마트는 업체별로 실적이 엇갈렸다. 이마트(트레이더스·전문점 포함)는 올해 1~3분기 매출이 1248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1775억원에서 1487억원으로 16.2% 감소했다. 롯데슈퍼와 통합 소싱에 힘써온 롯데마트는 매출(48060억원)1.7% 줄었으나 영업이익(800억원)89.9% 늘었다. 그간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적자 점포를 정리하고 기존 점포를 식품 중심 매장이나 종합쇼핑몰 형태로 리뉴얼하는 등 체질 개선 작업에 매진해왔다.

체질 개선 결과 3분기에는 수익성도 개선됐다. 이마트는 3분기 영업이익이 11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늘면서 3개 분기 만에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롯데마트도 3분기 영업이익이 320억원에서 510억원으로 57.3% 증가했다.

편의점, 고물가 속 반사이익가성비 PB 인기

올 한해도 편의점은 소비자들의 실생활에서 뗄 수 없는 채널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나 올해는 고물가로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이 팍팍해지면서 편의점의 가성비 높은 즉석식품 등이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편의점업계는 주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겨냥한 디저트 등도 잇따라 출시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 섰다는 평가다. 올해 고물가가 이어지며 식비가 치솟자 합리적인 가격의 편의점 간편식을 찾는 수요가 증가했다. 편의점 업계는 이 수요를 잡기 위해 5000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가성비 도시락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경쟁했다.

또한 올해 편의점은 트렌드의 집약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잡기 위해 각종 기획을 선보였다. 이들의 니즈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셀프계산대를 설치한 편의점 무인점포도 4년 새 17배 늘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200여 곳에 불과하던 편의점 무인점포가 올해 처음으로 3500곳을 넘겼다. 국내 편의점들은 수익성 강화를 위해 올해 글로벌 영토 확장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을 벗어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진출을 선택한 것이다.

CU, GS25, 이마트24 등은 현재까지 베트남, 몽골, 말레이시아 등에 850여개 점포를 오픈했다. 주로 본사가 현지 기업에 브랜드 사용권한이나 매장개설, 사업운영권 등을 주고 로열티를 받는 형식으로 점포를 냈다.

다만 편의점은 이런 노력으로 외형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고개를 숙였다. CU1~3분기 매출이 615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6% 늘었다. GS2557921억원에서 61795억원으로 6.7% 늘었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는 각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5.7% 신장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CU만 전년 동기 대비 1% 늘어났을 뿐 GS25(-5.7%), 세븐일레븐(-70.5%)은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이마트24는 영업이익 96억원에서 영업손실 36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이커머스 짠물 소비트렌드 주도쿠팡 첫 연간 흑자 눈앞

이처럼 2023년 백화점, 대형마트 등 주요 오프라인은 주춤했지만, 온라인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이커머스는 짠물 소비트렌드를 주도했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1만원 미만의 저가 상품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11번가가 지난 920일 론칭한 ‘9900원샵의 경우 10월 일평균 매출이 9월 대비 80% 증가했고, 11월에는 전달 대비 196% 급증했다. 티몬이 운영하는 만원의 행복기획관도 지난달 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8% 늘었다.

가성비 소비 트렌드 확산하면서 리퍼브상품 수요도 늘고 있다. 리퍼브는 매장에 전시됐거나 유통 과정에서 미세한 흠집이 생겨 반품된 상품을 말한다. 티몬의 1~11리퍼임박마켓매출은 지난해보다 80% 증가했고, 구매 건수와 구매 고객 수도 각각 66%, 63% 늘었다. 위메프에서도 올해 하반기 리퍼브 가전 매출이 지난해보다 2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짠물 소비 확산 결과 지난 10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905억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01년 통계 작성 이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2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2023년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첫 분기 흑자를 낸 쿠팡은 올해 첫 연간 흑자를 내다보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4448억원으로 전년 동기 228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3분기 매출은 81028억원으로 전년 동기(68383억원) 대비 18%가량 늘었다. 지난해 4분기 매출 7조원을 돌파한 이후 불과 10개월 만에 8조원대로 진입한 것이다. 반면 쿠팡의 대항마로는 알리익스프레스가 급부상했다. 지난 2018년 한국 시장에 뛰어든 알리익스프레서는 올해 31000억원을 들여 마케팅과 물류 서비스를 강화했다. 현재 알리익스프레스는 해외 직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알리익스프레스 앱의 국내 사용자 수는 551만명으로 전년 동월(227만명) 대비 약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익스프레스의 경쟁력은 첫째가 가격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을 직접 판매하고 배송까지 진행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가품 논란과 저품질 문제를 알리익스프레스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다.

홈쇼핑, 송출수수료 갈등 지속만성화 우려도

홈쇼핑 업계는 올해 송출수수료 협상으로 난항을 겪었다. TV 시청 인구 감소 등으로 실적 부진에 빠진 홈쇼핑들은 유료방송사업자(종합유선방송·위성·IPTV) 간 송출수수료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

CJ온스타일은 IPTV 3사를 비롯한 상당수 유료방송사업자와 올해 송출수수료 인하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GS샵과 롯데홈쇼핑도 일부 사업자와 합의 도출을 위한 막바지 이견 조정을 진행 중이다. 현대홈쇼핑과 위성방송업체 KT스카이라이프 간 수수료 협상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TV홈쇼핑의 업황이 앞으로 계속 악화될 것으로 보고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만성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홈쇼핑 업계 한 관계자는 송출수수료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홈쇼핑 업계의 어려움이 장기화될 수 있다갈등을 최소화하고 근본적인 수익성 개선을 위한 개혁에 나설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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