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약국 논란에 업계vs약국 ‘갈등 고조’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이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의약품 판매 서비스 방식을 두고 산업계와 약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본격 추진하면서 산업계가 약 배달, 화상 판매 등의 방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약국은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근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서비스는 의약품 화상 판매다. 키오스크와 유사한 모습의 기계 화상투약기로 화면을 통해 약사와 원격으로 상담하고, 일반의약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약국 앞에 설치해 심야 시간이나 휴일에도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스타트업 쓰리알코리아가 개발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화상투약기

화상투약기는 오는 20일 예정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실증특례 안건으로 부의됐다. 앞서 과기부는 지난해 12월 심의위원회에서 이해관계자간 상생 협의를 전제조건으로 해당 서비스에 대한 심의를 보류했다.

화상투약기가 개발된 시점은 지난 2013년이지만, 화상투약기는 아직 정식으로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약사법상 규제를 극복하지 못한 약점이 컸다.

현행 약사법 제501항은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다. 약국 밖에 설치된 기계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일종의 불법인 셈이다. 약국 내에 기계를 설치하고 화상통화를 위한 화면만 약국 밖으로 노출하는 형태의 기계도 나왔지만, 이런 방식과 관련된 규정이 없어 입법 공백 상태다.

편법 사용 우려에 약국가 강한 반발

화상투약기에 대한 약국가의 반발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화상으로 상담만 해주는 약사를 고용해, 여러 대의 기계를 설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편법 영업자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이런 탓에 해당 서비스를 지칭하는 단어조차 업계는 화상투약기’, 약국가에서는 약자판기등으로 상이하다.

이런 논란의 뒤에는 코로나19 펜데믹의 비대면 상황이 큰 몫을 했다. 화상투약기가 10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진 동안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한 것.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비대면 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다. 약국 근처까지 가야 하는 화상 판매기보다 집에서도 앱을 이용해 의약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약국가는 의약품 배달 역시 약사법을 위반 소지가 있는 서비스라 강조한다. 하지만 앞서 20202월부터 보건복지부가 공고를 내고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었다. 이 공고는 보건복지부가 언제든지 종료를 선언할 수 있어 한시적인 효력만 가진다. 공고가 종료되면 현재 운영 중인 의약품 배달 앱들도 화상 판매기처럼 오랜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계 VS 약국가 첨예한 대립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계와 약국가의 대립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비대면 진료 관련 불법행위를 자행한 플랫폼 업체 1개소, 의료기관 2개소, 약국 4개소 등 총 7개소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약국에서는 처방전과 다른 약을 임의로 조제하거나, 약사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가 약을 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대면 의약품 판매의 부작용에 대한 약사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약사회는 정부를 향해 약사법 위반 행태를 방치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은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고 국민의 의약품 구입불편은 심야약국 운영을 확대해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러한 제도는 근본적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산업계의 입장은 정반대다. 화상투약기를 개발한 쓰리알코리아의 박인술 대표는 처방을 받은 전문의약품도 택배로 배송해 받는 상황인데, 약사와 화상통화로 충분한 상담을 거쳐 약을 구매하는 화상투약기가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은 모순라고이 반박하고 있다. 이어 현재 화상투약기를 도입하기를 희망하는 약국의 수요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약 청문회 열고, 복지부 단속나서

이런 대립 속에서 17일 서울시약사회 윤리위원회는 광진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에 위치한 배달전문약국 4곳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날 출석한 서초구 약국장에게는 소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약국 포함 3곳은 청문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각 약국에 대한 징계수위는 비공개 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약사 면허 자격정지를 유력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역시 배달전문약국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전국 일선 보건소에 지침을 내리고 배달전문약국에 대한 복약지도 관리·감독을 강화하도록 했다. 복약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게 요지로, 위반 시 최대 1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정부는 약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그만큼 논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한시적인 허용이라도 국민 건강에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의약계 관계자는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고 법적인 명확한 해석이 어려운 만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라며 최대한 양측의 의견을 수렴해 국민건강과 국민편의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