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떤 과거를 지우고 싶은가요?”

불교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저는 산다는 게 원래 괴로운 것이라고, 그것이 인생의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사는 게 원래 힘들다는 말을 건넨들 고민을 상담하러 온 이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고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삶’이란 고통 앞에 선 그대에게> 중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명대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박하사탕>은 젊은 날의 잘못된 선택으로 막장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 영호가 기차에 뛰어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후회와 회한으로 절규하는 영호처럼 누구나 ‘나쁜 기억’을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기 마련이다.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 실수로 비틀어져 버린 인간관계, 잘못된 선택으로 도미노처럼 망가진 커리어, 하다못해 어제 회사에서 했던 말실수까지.

이런 기억들은 잊으려고 애쓸수록 꾸역꾸역 올라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그럴 때면 잠 못 이루며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그 기억을 말끔히 삭제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질까?’

저자의 말을 빌리면,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영화 <맨인블랙>처럼 장치를 이용하거나 최면을 걸어 ‘영구히’ 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은 ‘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당사자의 기억은 실제로 일어났던 상황의 한 단면인 것이고, 그렇기에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나쁜 기억은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일과 사랑, 가족과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상처받은 23명의 인물이 철학자를 찾아와 자신의 ‘나쁜 기억’을 털어놓는다. 철학자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침을 놓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주며 과거의 기억을 재해석하는데, 이때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대화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23명의 내담자와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특수한 ‘각자의 사정’에서 뽑아낸 보편적인 ‘삶의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 나의 고민이 누구나 거쳐 가는 삶의 행로임을 인식할 때 얻는 위로만큼 지친 마음을 깊이 어루만져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삶은 원래 고통이다’라는 것.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선악무기’라는 말을 언급한다. 고통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이 선악에는 도덕적 의미가 없고, 그저 선은 ‘득이 된다’, 악은 ‘득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괴로운 일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악’은 아니다. 고통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따라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가 결정된다.

결국 과거의 기억을 ‘악’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현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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