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환불 사태…피해 우려 확산

‘머지 신공(머지포인트를 이용해 할인혜택을 보는 쇼핑 행태)’은 혁신적인 ‘레버리지 비즈니스’일까 아니면 그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폰지 사기’일까.

6만여 가맹점과 약 100만명의 누적 소비자를 모았던 것으로 알려진 머지포인트의 대규모 환불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머지플러스가 운영하는 머지포인트는 무제한 20% 할인 혜택을 내걸어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2019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알뜰한 소비를 추구하던 소비자들에게 ‘머진 신공’이라고 불리며 급성장했다.

머지포인트는 동네에 널린 편의점, 대형마트, 대형 프랜차이즈 등 쓸 곳이 많아서 현금과 유사했다. 게다가 ‘할인’을 구독한다는 신개념도 도입했다. 한달에 1만5000원씩 내고 머지플러스를 구독하면 가맹점 무제한 20% 할인인데, 구독료만큼 할인 혜택을 못 받을 경우 차액은 머지머니로 되돌려준다. ‘혁신’스럽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한 요소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은 머지포인트 구매 금액을 늘였다. 예를 들어서 처음엔 10만원어치 포인트를 구매했지만, 두번째는 100만원어치를 한 번에 사버리는 식이었다.

소비자들도 대대적인 할인율에 의구심을 가지긴 했을 것이다. 쉽게 생각해도 머지플러스가 수익을 내는 다른 사업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면서 손실이 불가피한 20% 할인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심이다. 저금리 시대에 선불충전금을 걷어서 이자로 20% 수익이 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들에게 당장 눈앞의 할인율은 거부하기 힘든 유인 요소였다. 무엇보다도 리스크를 가릴 핑계가 되어줄 ‘병풍’들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대기업 편의점들이 이 회사의 포인트 결제를 받아주고 있어서였다. 또 머지포인트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빕스, 본죽 등 각종 유명 프랜차이즈와도 제휴했다. 브랜드 수만 200여 개에 달했다.

아울러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소위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우 사업모델 잘 만들어서 몇 년 뒤 손익분기점이 나오고 언론 조명을 받거나 하면 투자자를 모아서 고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쿠팡의 경우도 수년 동안 적자를 감수하면서 플랫폼에 사람을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나스닥 상장을 통해서 100조원 가까운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회사가 적자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면 포인트 결제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금융당국의 허술한 규제의 사이에서 모래성 같은 신뢰를 기반으로 영업하다가 규제 이슈가 불거지면서 한순간에 환불 대란으로 이어졌다. 머지플러스가 돌연 포인트 판매 중단 및 결제가맹점 축소를 선언하면서 환불 대란, 먹튀 논란으로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영세 가맹점 피해 우려 ‘확산’

금융감독원이 지난 8월 11일 머지포인트 운용사인 머지플러스에 전자금융업자 등록을 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 사태의 발화점이 됐다. 금감원은 머지플러스가 3년여 동안 모바일선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상품권 사업자 등록만 하고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더불어 금감원은 머지플러스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지난 18일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금감원의 본격적인 개입에 머지플러스는 가맹점의 대부분을 갑자기 빼버렸고, 사용처를 축소했다. 애초 상품권 사업자였다면 사용처가 한정적이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용처의 갑작스런 축소에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전면적인 환불요구에 나섰다. 이는 머지포인트가 사회문제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사태가 긴박해지면서 머지플러스는 구매금액의 90% 정도를 환불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 주겠다는 것을 적시하지는 못했다.

머지플러스 권남희 대표는 최근 SBS와 인터뷰에서 “환불 요청으로 업무가 마비됐고, 이 과정에서 미흡하게 대응해 고객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이 일시에 환불 요청을 한다면 감당하기 어렵다”면서도 “순차적으로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또 권 대표는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산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정산 여부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확산되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환불 대란이 터진 직후 전국 6만여개의 가맹점 중 대형점들은 수익구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서둘러 발을 뺐다.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섣불리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됐다. 소비자들이 남아있는 머지포인트 가맹점으로 몰렸다. 주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상이었다. 머지포인트를 환불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남은 가맹점에서라도 포인트를 소진하자는 것이다. 가맹점으로 남아있는 음식점 등에 고액 선결제 문의가 폭주했다. 남은 가맹점들은 머지포인트로 결제를 받은 후 제때 정산을 받을 수 있을지 예단할 수 없다. 아직 정산 시기가 오지 않은 곳이 많아서다.

한편 머지포인트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와 스타트업 업계의 극단적인 엑시트 전략을 거론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머지포인트 사태의 원인을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에서 찾고 있다. 금융당국의 섣부른 규제 완화가 매년 대형 금융사고의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금융노조는 “재작년 부실 사모펀드 사태와 지난해 가상화폐거래소 문제, 이번 선불충전업자 사태는 모두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금융위원회는 지금도 규제 샌드박스 등 ‘혁신’의 강박에 사로잡혀 규제를 풀고 있고, 과실은 신흥재벌 네이버, 카카오 등이 거두고 있다”며 “전자금융업자를 규율하는 법은 낡았고, 미등록 사업자들에 대한 감독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스타트업 업계의 엑시트 전략의 극단이 머지포인트 사태로 발현됐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엑시트를 위한 피인수 시, 수익 창출보다는 사용자 수를 주요한 지표로 보는 관행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대기업들은 손쉽게 스타트업을 사들여 새로운 고객접점을 확보하고, 스타트업은 고객 수만 어떻게든 늘리면 엑시트할 수 있는 기이한 거래가 형성되고 있는 점이 머지포인트 사태의 기반이 됐다는 의미이다.

머지포인트 경우 수익성이 낮은 수준을 떠나 수익모델이 ‘전무한’ 수준으로까지 평가됐음에도 가맹점 확보와 포인트 판매가 지속되면서 소비자와 가맹점 피해 우려가 확대됐다.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산업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무리한 이용자 확보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금융당국이 미리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적정한 기준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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