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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 거세지는 ‘파오차이(泡菜)’ 논란중국 ‘김치공정’ 우려…미온적 정부대처 불만고조
  • 전진용 기자
  • 승인 2021.05.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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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에서 한·중 간 ‘김치 기원 논쟁’이 거세지면서 그 불똥이 유통가로 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국내 김치 제조 및 유통 기업들을 대상으로 ‘파오차이(泡菜)’라는 중국식 김치 표기를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국 식품 표준에 따르지 않는 제품은 현지 사업과 판매를 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내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중국 진출 기업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고 있어 유통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과격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불매운동’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 진출한 유통기업들 역시 이런 여론을 감안해 대안책을 찾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中 ‘파오차이’ 표기 강제…울며겨자먹기식 표기

가장 난처한 곳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식품유통기업들이다. 중국 정부가 김치 관련 제품에 대해 ‘파오차이’ 표기를 강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현재로서는 전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중국발 ‘김치공정’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한국식 김치 표기를 위해 마련했던 제도 역시 당장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이지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이 현지에서 판매하는 김치와 관련제품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파오차이’를 표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상그룹이 운영하는 브랜드 ‘청정원’과 ‘종가집’은 중국에 수출 또는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 중인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기해 판매하고 있다. 패키지 전면에 파오차이와 함께 영어와 한글이름 김치(Kimchi)를 동반해 작게 표기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CJ제일제당은 김치를 사용한 여러 간편식에 ‘파오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유통 중인 ‘파오차이 찌개(泡菜)’와 한국식 ‘파오차이 군만두(韓式泡菜煎)’가 대표적이다. CJ제일제당은 현재 간편식을 제외하고는 중국에 비비고 김치를 판매하거나 수출하지는 않고 있다.

풀무원의 경우 중국 현지 법인을 통해 김치를 생산·판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법인 ‘포미다식품’은 제품명에 ‘자른 파오차이(切件泡菜)’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 식품유통업체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사실상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강제하는 조건에 맞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해서 기업 스스로 직접 중국 정부와 맞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대다수의 국내 기업들은 “중국을 상대로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정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미온적 정부 대처에 기업만 속앓이

중국 정부의 ‘김치공정’ 논란에 대해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GB)’ 때문이다. 중국에 수출 또는 생산·판매하는 식품은 모두 GB 표기 방식과 생산 조건을 따라야한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사업 진출과 판매·유통이 금지된다. GB는 현재 한국 김치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의 절임류 채소로 만든 식품을 ‘파오차이’로 표기하도록 분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치공정’ 논란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 중국 정부와 해결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미온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시행한 개정 ‘김치산업 진흥법’도 김치 표기 세계화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해당 제도는 제품에 ‘한국 김치’나 ‘대한민국 김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지리적 표시권을 취득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표시권을 취득하기 위해선 국내에서 생산한 주원료(원료 함량 상위 3개)를 국내에서 가공해야 한다. 기업들은 김치의 모든 원재료를 국내에서 조달하거나 생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표시권 취득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현재 법 시행 반년이 넘도록 국내 주요 김치 업체 중 국가명 지리적 표시권을 등록한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에서 조차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로 번역해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체부 훈령(제427호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표기 지침’)의 중국어 관련 조항은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규정하며 ‘김치’를 ‘파오차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한 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문체부의 훈령에 따라 일부 정부 기관 홈페이지에서도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훈령은 그대로 존재하며 국립국어원과 한국관광공사 사이트에서도 파오차이가 검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제해결에 나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파오차이’ 논란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마트 제주점이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로 병기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치 진열대를 안내하는 문구에 김치와 파오차이를 병기했기 때문이다. 이마트 측은 지난 13일부로 파오차이 표기를 제거했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중국의 김치공정에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김치가 K-푸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며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당국은 이달 중 김치 표기와 관련한 기업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전진용 기자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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