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은 투박하고 거친 듯 하지만 그 속내만큼은 부드럽고 깊은 정이 느껴진다. 문화와 역사가 오롯이 남아 있는 영남루에 오르면 수백 년간 이어온 밀양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홍색의 탐스러운 딸기가 봄을 전하는 곳, 밀양을 다녀왔다.

오는 봄을 누가 막을까

탐스럽게 익은 새빨간 딸기 한 입 베어 물면 봄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 딸기가 처음 도입된 곳은 밀양 삼랑진읍이다. 1943년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모종 10여 포기를 가져오면서 딸기 재배가 시작됐다. 그만큼 밀양은 딸기재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1962년부터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하면서 한겨울에도 신선한 딸기를 맛볼 수 있다.

삼랑진 주변 들녘은 온통 딸기비닐하우스다. 입춘이 지나면서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 하지만 아직도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동장군이 절대 넘보지 못하는 곳이 딸기비닐하우스다. 실내온도가 무려 30도. 거추장스러운 옷은 모두 벗어 던지고 딸기 수확이 한창이다. 밀양 딸기는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밀양강은 역사를 품고 흐른다

밀양의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신라 경덕왕 때 건축된 이후 고려 공민왕 때 규모를 키워 중건했다. 현존하는 것은 조선 시대 밀양부사로 재직한 이인재가 1844년에 재건한 것이다. 영남루에 오르면 밀양강과 밀양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대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한적함이 소도시여행의 매력이듯 밀양 역시 한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하다.

누각의 단층에는 화려한 색감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긴 세월 비바람과 맞서 싸워 승리한 장군처럼 그 위용이 전해온다. 오랜 세월, 시간이 만든 거친 색으로 몸치장을 했다. 붉은 기둥 사이는 막힘없이 모두 개방되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다. 큰 연회도 거뜬히 치러낼 만큼 넓은 공간이다.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럽다. 누각 천장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 최고의 명필가와 학자들의 시문 현판이 가득하다. ‘영남루’ 현판은 1844년 재건 당시 이인재 부사의 아들 11살 이주석과 7살 이현석 형제가 쓴 것이다.

밀양읍성으로 발길을 향한다.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 탓에 다리가 묵직해져 온다. 몇 계단을 올랐을까. 성내에는 시민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있고 그 주위에 ‘명(命)’가 선명하게 적힌 깃발이 휘날린다. 성곽에 올라서니 밀양강과 밀양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첫눈에 천혜의 요새임을 직감한다.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철도공사를 위해 성문과 성벽을 헐어 지금 남은 것은 일부를 복원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부선철도 위로 쉼 없이 기차가 질주한다.

읍성에서 가장 높은 곳 무봉루에 올라 밀양 시내를 바라본다. 짙은 안개가 도시 전체를 휘감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모습에 애간장을 녹인다.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하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밀양아리랑이 무심하기만 하다.

인근에 있는 박시춘 선생의 생가와 아랑각을 함께 돌아본 뒤 수변 산책로를 걷다 밀양관아로 향한다. 밀양관아는 2008년에 발굴해서 201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최근에 ‘밀양아리랑 길’이 조성됐는데 1코스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다. 6.5km에 이르는 1코스는 밀양관아를 시작으로 영남루까지 이어진다.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 : 내비게이션 검색 ‘영남루(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 별미 : 영남루와 가까운 상설시장 골목 한쪽에 자리한 ‘돼지국밥 단골집’은 외관은 허름하나, 백종원의 삼대천왕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다. 한국전쟁이 있기 전부터 시어머니가 돼지국밥을 끓여 팔았는데 그것을 물려받아 70여 년 동안 맛을 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