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나는 열이 신체를 약하게 만들 듯, 증명되지 않은 최초의 믿음은 생각을 약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어떤 수사에 임하든 계속 새로운 가능성과 사실에 열려 있지 않으면, 수사의 첫 번째 명백한 원칙들은 그저 통속적인 문구로 전락해버린다. 그 원칙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열린 자세로 대하라, 예단하지 마라, 넘겨짚지 마라, 속단하지 마라, 편견에 빠지지 마라.

-책 속에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슈 중 하나는 바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일 것이다. 이들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정의의 실현을 위한 쟁투로 보이지만, 국민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지는 의문이다. 사법부가 가장 우선해야 할 ‘법 앞의 정의’는 수뇌부의 쟁투 이슈에 묻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듯하다. 그간 한국 사회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로 법의 공정함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판결이 많았다. 단순히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의 법 감정과 공고한 시스템으로서의 법 사이에 놓인 간극이 큰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는 배고픔에 삶은 계란 몇 개를 훔쳤다가 1년이 넘는 징역형을 받는가 하면, 유력 인사의 딸은 신종 마약을 투약하고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되었는데도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정의가 훼손된 판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법판결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 프릿 바라라는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에서 “정의는 포괄적이고 막연한 주제다”라고 말하며 정의가 지닌 복잡다단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말도 덧붙인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그 과정을 책임진 자들의 태도가 공정하다고 여길 때, 그 결과도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흔히들 정의는 실현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이 눈에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공정한 절차를 보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라라는 많은 사회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것이 늘 법의 실패나 사법절차의 실패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법체계는 편협함, 그릇된 선입견, 편파적 태도, 사익으로 정의에 접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곧잘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법체계를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여기기보다, 남들을 짓누르고 뭔가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 책에서 프릿 바라라가 제시하는 정의에 대한 접근법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법정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성숙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직장, 가정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도 일러주는 기준이 될 만한 것이다. 이 책은 단지 법만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진정성과 리더십, 의사결정 그리고 도덕적 논거를 다룬다. 이 모두가 정의의 의미와 본질에서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법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거나 존경하도록 강제하지 못한다. 증오를 없애거나 악을 정복하지도 못한다. 은총을 가르치거나 무관심을 깨뜨리지도 못한다. 매일매일 법의 최고 목표를 달성하는 주체는 잘하든 못하든 인간이다. 정의를 실현하거나 좌절시키는 것도 인간이다. 자비를 베풀거나 거절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결국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인간이다.

사회정의에 대한 부정적인 의문이 가득한 지금,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통해 법을 통한 정의의 실질적 실현에서부터, 인간이 법의 집행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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