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면 마음이 설렌다. 첫눈 오기를 기다려 연인들은 약속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도심의 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교통에 방해되고 보행에 장애가 된다며 쌓이기가 무섭게 폐기처분된다. 사실 눈만큼 세상을 한순간에 바꿔주는 게 있을까. 온통 잿빛이었던 도시가 하룻밤 새 양털 코트를 갈아입은 듯 근사하지 않은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박자박 눈길을 걷고 싶어 청주 상당산성과 청남대를 찾았다.

눈이 내린 고즈넉한 산성의 겨울

청주의 상당산성에 첫눈이 내렸다. 상당산성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숙종(1716년) 때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전한다. 이른 봄에는 벚꽃이 팝콘 터트리듯 산성 곳곳에서 피어나고 뒤를 이어 진홍빛 철쭉이 산성 주변을 물들인다.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을 지나 가을에는 오색단풍으로 치장한다. 지난 일 년 마라톤 레이스를 펼치듯 다채로운 풍광을 자랑하던 산성은 겨울을 맞았다. 이제야 산당산성은 정점에 이른듯하다. 화사한 봄꽃, 찬연한 신록, 오색빛 단풍도 순백의 눈꽃 위엄 앞에 무릎을 꿇게 되나 보다.

첫눈 소식을 듣고 차를 달려 도착하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꽃은 햇살을 받아 영롱한 이슬로 변했다. 자박자박 눈을 밟으며 산성 주변을 한 바퀴 트레킹 하기로 했다. 산성은 능선을 따라 성벽이 4.2km 가량 이어진다. 원점 회귀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아이젠, 스틱 등 장비만 잘 갖추면 눈길 트레킹은 누구나 가능하다. 첫 시작은 상당산성의 랜드마크인 남문이다. 남문 앞으로 너른 완경사지가 펼쳐진다. 푸른 초원이었던 이곳에 눈이 쌓이니 흰색 융단을 깐 듯 눈이 부시다. 남문을 통과해 서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쌓인 눈이 방음 역할을 하는지 자박자박 눈 밟는 소리와 이따금씩 지저귀는 산새소리만 들렸다. 약간이라도 오르막이 나오면 묵직하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10분쯤 올랐을까. 벌써 전망이 시원하게 뚫렸다. 시계가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높은 곳에서 보니 올라갈 때는 볼 수 없었던 성벽의 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굽이굽이 물결치는 성벽 길. 지난 일 년 한발 한발 걸어온 길처럼 느껴져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모난 돌처럼 발에 밟히는 줄 알았는데 모두 하나로 모여 유연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연이어 나타난 서문과 동문을 지나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시작과 끝이 한곳에서 만난다는 사실도 새삼스럽지만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고 첫눈이 왔기 때문이리라.

역대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

청남대는 1983년 12월 27일 조성된 이후 2003년 4월 18일 충청북도로 이양되기까지 20년간 대한민국 공식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됐다. 청남대 개방 이후 대통령 별관은 대통령 기념관으로 단장해 문을 열었다. 20년간이나 시민에게 개방되지 않아서 일까, 청남대의 자연 생태계는 그야말로 훌륭하다. 조경수 100여 종 5만 2천여 그루와 야생화 130여 종 20여만 본이 자라고 있다. 여기에 멧돼지, 고라니, 삵, 너구리, 꿩 등이 서식한다. 특히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로는 걸어볼 만하다. 목재테크, 황톳길, 마사토길, 목교 등이 갖추어져 있어 걷기에 좋다. 울창한 수목이 감싸고 있어 삼림욕장을 거니는 듯 기분이 상쾌해진다. 행락객이 붐비는 봄·가을 대신, 쓸쓸한 겨울철에 찾으면 대통령의 정원을 홀로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첫눈이 내리면 마음이 설렌다. 첫눈 오기를 기다려 연인들은 약속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도심의 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교통에 방해되고 보행에 장애가 된다며 쌓이기가 무섭게 폐기처분된다. 사실 눈만큼 세상을 한순간에 바꿔주는 게 있을까. 온통 잿빛이었던 도시가 하룻밤 새 양털 코트를 갈아입은 듯 근사하지 않은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박자박 눈길을 걷고 싶어 청주 상당산성과 청남대를 찾았다.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내비게이션 검색어) : ‘상당산성’(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 문의 : 청주시청 043-20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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