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힐링여행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성큼 다가선다. 뜨거운 여름태양을 이겨낸 나무들이 승리의 열매를 맺었다. 알알이 영글어가는 열매는 낮과 밤의 기온차 만큼 성숙해간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서 몸과 마음이 고요한 힐링을 원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유유자적 걸으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멀지 않은 횡성을 찾았다.

영화 속 한 장면, 횡성 풍수원성당
풍수원 성당은 처음 보아도 낯익은 모습이다. 어느 영화인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언젠가 한번은 보았을 법한 건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수없이 등장했다고 한다. 건물의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자태가 가을과 무척 잘 어울린다. 나무들이 온통 가을색을 머금고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을 때 이곳을 방문하면 더 없이 좋다. 유럽의 소도시를 거니는 영화 속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을 터이니.
풍수원 성당은 1907년 지어진 국내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한국인이 국내에 지은 최초의 성당이어서 역사·건축·종교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성당의 역사보다 풍수원의 역사가 더 깊다. 1800년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40여명의 신자들이 이곳에 와서 신앙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성당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가마에서 벽돌을 굽는 등 땀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200여 년 전 그들이 현실의 고통을 피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던 영향이 남아 있는 걸까. 성당건물과 사제관, 유물전시관과 외부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술과 자연의 만남, 미술관자작나무숲
서울서 출발해서 2시간 여.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흐드러진 개망초길을 따라가니 주차장부터 맞는다. 나무그늘이 포근하게 덮인 그 곳에 차를 대고 개인주택 대문처럼 소박한 미술관 정문으로 향한다. 입구에서 적지 않은 요금으로 매표를 하고 사진엽서를 받는다. 이것은 카페에서 음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이다. 멧새가 울고 사람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평일에 방문할 경우 숲을 오롯이 독차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비밀의 숲으로 발을 내딛는다. 고즈넉한 산책로를 조금 걸으니 오른쪽에 잘생긴 자작나무 군락이 맞이한다. 조금씩 가을 색을 입는 황금빛 잎사귀와 하얀 자작나무가 어울려 싱그러운 자태를 뽐낸다. 언덕을 따라 산책로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딱히 울창한 숲과 시설이 있지는 않아도 번잡스럽지 않은 탓에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개인이 가꾼 숲이다. 1991년부터 원종호 관장이 자작나무 12,000만 주를 심어 2004년에 정식으로 오픈했다. 그는 횡성토박이로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카메라를 잡았다. 자작나무 숲 전시장에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원종호 관장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원 관장은 자신의 고향 횡성의 자연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왔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자작나무 사진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고 삶과 자연을 노래하듯 사진예술로 펼쳐놓았다. 2개의 전시장을 다 둘러보며 야외 산책로를 다 거닐었다면 스튜디오 카페에서 휴식할 차례다. 나무로 지어진 카페는 은은한 조명과 음악, 짙은 커피향이 어울려 미술관 숲에 왔다기보다 분위기 좋은 카페로 놀러온 기분이다. 미술작품과 빈티지한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하다가 한구석에 놓여있는 책을 읽기에도 좋다. 하루정도는 현실의 잡다한 삶을 잊고 자연 속에서 책과 커피향에 푹 빠지는 것. 그리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것. 그것이 참된 힐링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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