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속 비친 다단계판매는 사기일 뿐…하나의 범죄로 인식될 우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38사기동대’.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평균 5.9%를 기록, OCN 개국 이래 최고 신기록을 갱신하며 종영했다. 세금 징수 공무원과 사기꾼이 합심해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상습적으로 탈세를 저지르는 악덕 체납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스토리를 다룬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통쾌하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여러 에피소드 중 서인국이 연기한 양정도가 다단계 기업 회장 조희준으로 변신, 투자설명회를 열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청중을 세뇌시키며 두 손을 번쩍 들고 “부자”라고 연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양정도는 “투자를 해서 몇 달 뒤 이자 먹으면 투자금으로 다시 주식사고…, 머 1년 빡세게 돌리면 1000%! 1000만원 박으면 1억 챙긴다 그런 얘기죠. 이게 인제 동황문화거래소 보상플랜 시스템이지요.”라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뒤이어 드디어 감옥에 가게 된 진짜 사기꾼과 세금 징수 공무원의 대화에서는 “당신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 다단계 회사인줄 모르고 속아서 당신한테 충성한 사람들 그 사람들 다 당신 때문에 다쳤어.”라고 말한다. 

SBS에서 방영된 ‘미녀 공심이’에서는 취준생 공심이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는 선배의 연락을 받고 밤늦게 찾아갔다 다단계 회사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핸드폰까지 압수당한 상태에서 말이다.
흔히들 미디어를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드라마도 그러하다.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장면이 방송을 타면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이것이 곧 진실이라 믿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38사기동대에 나온 대사대로라면 이는 ‘폰지사기’에 해당한다. 제품 판매가 목적이 아닌 고배당을 미끼로 투자금을 끌어 모으는 금융사기수법으로 이는 ‘다단계판매’와 전혀 관련 없다. 미녀 공심이의 경우에도 다단계판매가 마치 범죄유형의 하나인 양 그리고 있다.
다단계판매는 ‘다단계’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늘 ‘사기’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사수신이나 피라미드 사기도 ‘다단계 사기’라고 보도되기 때문이다. ‘다단계판매’와 ‘다단계 사기’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게 굳어지면서 합법적인 인가를 받고 정도경영을 하는 다단계판매 업체들마저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8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소비자 피해 사례를 보면 다단계판매 소비자 피해 건수는 1258건이다. 같은 기간 일반판매는 34만4363건, TV홈쇼핑 2만3661건, 방문판매 2만6260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부터 2015년 8월까지 발생한 소비자 피해접수 건수를 모두 다 합쳐도 4680건이다. 시장 규모가 일반판매에 비해 작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분명 낮은 수치다. 소비자 피해가 적음에도 다단계판매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업종으로 낙인 찍혀 늘 불법이고 사기였다.

올 초에는 한국직접판매협회와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직접판매공제조합 등이 뭉쳐 ‘다단계판매 용어 오남용 상설 협의회’가 조직됐다. 공동 모니터링을 통해 다단계 용어 오용 사례를 발견하는 즉시 즉각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해 대응 적시성을 높이겠다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언론 기사뿐만 아니라 TV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문화콘텐츠에서는 다단계는 곧 사기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며 “다단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외침에 귀 막았나

업계에서는 몇 해 전부터 ‘다단계판매’라는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다단계판매가 유통 산업의 한 축으로써 그 역할이 커지고 있는 만큼 불법 피라미드나 유사수신행위 등과 확실한 구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불황을 틈타 불법 피라미드나 유사수신행위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용어변경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지난 2012년에는 ‘다단계판매 용어 및 최종소비자의 정의 재정립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다단계판매 용어 변경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임영균 광운대 교수는 발제 설명을 통해 “다단계판매는 직접판매의 보상플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보상플랜으로 업종이나 업태를 구분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전익수 변호사는 “전화권유판매나 방문판매 등은 판매하는 방식에 포인트를 맞춰서 정의했다”며 “다단계판매는 이들과 달라 용어 자체로 혼동을 줄 수 있어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판매 대체 용어로 ‘회원직접판매’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업계는 사실과 다르게  ‘다단계’라는 용어 때문에 받고 있는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을 씻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용어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귀를 닫고 듣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업계 관계자는 “다단계판매가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다단계판매’라는 용어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나 입법기관에 업계의 목소리가 반영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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