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호소하는 현대인 5년 새 41% 증가…수면 산업, 수면 위로 떠올라

‘꿀잠’이 돈 되는 시대가 됐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늘어난 덕(?)이다. 이에 수면과 경제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수면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면제 정도가 산업의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에는 수면제나 침구뿐 아니라 숙면에 도움 되는 디퓨저, 입욕제, 음악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수면 산업이 커진다는 것은 곧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란 생각에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불면공화국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꿀잠을 위한 움직임을 짚어봤다.

‘꿀잠’ 못 자는 사람들
옛말에 ‘잠이 보약’이랬다. 건강하게 살려면 그만큼 ‘잠’이 중요하다는 말일 터. 근거 없는 소린 아니다.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수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감기를 비롯해 감염 질병에 걸릴 확률이 숙면자들에 비해 무려 8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는 단순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부터 밤에 6시간 이상 자도 낮에 졸린 현상이 나타나는 ‘과다수면증’, 잠들 무렵 다리에 느껴지는 불편감으로 잠을 못 이루는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 등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수면무호흡증’ 등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종류만 80가지가 넘는다.
수면장애를 겪으면 단순 피로를 넘어 비만,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의 위험이 높아진다. 심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져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충분한 수면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증명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바쁜 일상에 쫓겨 충분한 수면을 해결 못하는 현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민 건강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8시간. 성인 권장 수면 시간인 7~9시간에 못 미친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국가별 일평균 수면시간 조사’에서도 한국은 7시간 49분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1위인 프랑스(8시간 50분)와는 한 시간가량 차이가 났다.
수면 시간이 짧은 이유로는 긴 근무 시간이 지적됐다.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 시간은 2163시간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멕시코(2237시간)를 제외하고 가장 길었다.
실제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 28만8000명에서 2012년 35만8000명, 2014년 41만4000명, 지난해 45만6000명으로 5년 새 41%나 급증했다. 10명 중 1명은 잠을 이루지 못 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수면욕은 식욕, 성욕과 함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이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특히 30대 여성의 수면장애 비율이 높았다. 이에 대해 서호석 강남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육아와 직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하나의 요인으로 봤다.
서 교수는 “30대 주부들의 경우 육아에 대한 심적·정신적 스트레스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주말에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것이 수면 사이클을 망치는 주된 이유”라고 전했다. 이어 “30대 직장 여성들의 경우에는 업무 스트레스, 조직 내 대인관계의 갈등 및 과다한 업무로 인한 수면리듬의 불균형 초래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 불리는 잠을 타깃으로 한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돈을 주고 단잠을 사는 시대’가 된 것.
지난해 이마트의 수면안대 매출은 전년대비 230%나 증가했으며 아로마 용품 판매액도 3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11번가에서도 라텍스 등 기능성 침구 매출이 33%, 캔들과 디퓨저는 43% 증가하는 등 수면용품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짧게라도 나를 위한 편안한 쉼을 갖고 싶은 욕구가 다양한 수면 상품과 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꿀잠’ 파는 사회
과거에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면제 정도가 수면 산업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잠을 잘 오게 하는 음료와 향, 소리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슬립 코디네이터를 갖춘 수면용품 전문매장도 등장했다.

이브자리는 개인 맞춤형 수면 전문 브랜드 ‘슬립앤슬립(Sleep&Sleep)’을 선보였다. 개인의 수면 습관에 맞춰 제품을 선택하도록 체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 교육을 받은 슬립코디네이터가 항시 상주해 고객이 매장에 방문하면 수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4월 본점을 시작으로 지금은 11개 점포에서 건강수면숍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개인별 맞춤 컨설팅 서비스로 수면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기능성 침구와 소형가전 등 수면과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송창현 롯데백화점 생활가전부문 수석바이어는 “힐링을 위해 편안한 수면에 투자하는 고객이 꾸준히 늘면서 침구, 소형가전, 디퓨저 등 수면 관련 용품이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사람들 개개인마다 자신의 피부타입에 맞춰 화장품을 선택하듯이 수면용품 역시 자신의 수면타입에 맞춰 꼼꼼히 골라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숙면에 도움을 주는 아로마테라피도 인기다. 마음의 평안과 심신 안정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아로마

테라피를 찾고 있는 것. 지자코리아의 ‘아메오 퓨어 트랜퀼리티 블랜드 오일’은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온화한 향으로 편안함을 준다. 디퓨저에 담아 활용하거나 마사지를 하면 편안한 잠을 청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앱이나 전자기기 등 수면 산업이 IT업계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료 아이폰 앱 중 하나인 ‘굿슬립’은 수면을 도와주도록 여러 소리를 녹음한 앱으로 아이폰 사용자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삼성전자는 IoT형 수면보조 제품 ‘슬립센스’를 올해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 제품은 수면주기, 맥박, 호흡 등 사용자의 수면 패턴과 질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한다.
수면에 도움이 되는 기능성 음료도 속속 나오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선보인 ‘슬리피즈’는 백야현상을 겪고 있는 북유럽 사람들이 밤에 ‘나이트 밀크’를 마신다는 점을 착안해 분말형태로 만든 제품이다. 실제로 나이트 밀크에 다량 함유된 멜라토닌 성분은 수면호르몬으로 불리며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쥬맥스도 캐나다에서 들여온 ‘슬로우 카우’를 판매하고 있다. 이 음료에 함유된 L-테아닌과 바레리안 뿌리 추출물 등의 성분은 천연 진정제로 사용될 정도로 긴장과 불안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잠깐의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수면의 공간을 제공하는 수면 카페와 영화관도 등장했다.
CGV는 올 3월부터 서울 여의도점의 상영관 하나를 평일(월~목) 점심에 통째로 수면실로 제공하는 ‘프리미엄 시에스타(siesta·낮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료 1만원을 내면 극장 좌석 뿐 아니라 차와 아로마향, 담요, 슬리퍼 등을 제공한다. 특히 이곳은 피곤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문, 잠시 들러 재충전할 수 있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꿀잠’ 권하는 시대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이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은 독일의 미사일이 날아드는 상황에서도 낮잠을 즐겼다고 한다. 또 2차 대전이 끝난 후 힘든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매일 낮잠을 잔 덕분이라고 할 정도로 낮잠 예찬론자였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히틀러가 패한 것은 처칠처럼 낮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처칠처럼 회사들도 직원들에게 ‘낮잠’을 권하고 있다. 그것도 바쁘게 일해야 하는 시간에 말이다. 현대카드는 최근 낮잠 전용공간인 ‘냅 앤 릴렉스존(Nap & Relax Zone)’을 마련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사진과 함께 “식사는 간단히 하고 피곤한 몸을 보살피겠다는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라며 낮 시간에 활용도가 낮은 요가실과 검도장이 수면 공간으로 바뀐 사진을 올렸다.
천호식품도 직원 복지시설 ‘웰피스’를 조성, 그 안에 수면실을 만들었고 여행업체 여행박사도 시간단위로 쪼개 쓸 수 있는 ‘시간 연차’ 제도를 도입, 이를 이용해 낮잠을 잘 수 있도록 했다. 꿈의 기업이라 불리는 구글코리아를 비롯해 한국MS, 한국IBM 등 외국계 회사들도 직원들의 낮잠을 권하고 있다.
기업들이 잠을 허락하는 이유가 뭘까. ‘잘 자야 일도 잘한다’는 판단에서다. 충분히 자야 건강한 것은 물론 일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것. 이는 여러 연구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이처럼 한국은 이제 ‘잠=돈’인 사회가 돼가고 있다. ‘오래’ 일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잠’ 잘 자는 사람이 ‘일’도 잘 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질 좋은 잠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기업도 매출을 위해 ‘수면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면산업이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수면산업이 신성장동력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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