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28일은 한국사회에서 ‘청렴을 법으로 어디까지 강제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가 던져질 날이다. 화두는 ‘청렴한 사회 구현’인데, 시행 한 달여를 앞두고 부상한 반응은 소비위축에 대한 우려다. 규제 대상의 범위가 넓고, 규제 가이드라인도 불분명한 법률의 시행이 가져 올 파열음에 대한 우려는 당장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있는 유통업계에서 먼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음식점과 선물수요가 연간 6조5000억원 감소하고, 이로 인한 파급효과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이 11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통업계에서 시작될 내수침체의 부정적인 효과가 산업계 전반에 퍼질 것에 대한 적정도 존재한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으로 제한된 김영란법의 시행이 백화점·대형마트·외식업·홈쇼핑 등 유통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짚어봤다.

유통가, 소액 선물세트 ‘분주’

김영란법의 시행에 따라 9월 28일부터 공무원·교원·언론인 등에게 할 수 있는 선물의 가격은 5만원을 넘으면 ‘위법’이 된다. 전체 매출에서 선물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백화점 관계자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비중이 워낙 작다 보니 매출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며 “당장 이번 추석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선물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명절 선물세트 매출에서 5만원 미만 세트 비중이 5% 미만일 정도로 고가 선물 수요가 많다. 우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는 그나마 5만원 이상 선물 비중이 높지 않다. 하지만 전체 시장 위축의 여파를 걱정하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백화점보다는 대형마트가 받는 영향이 덜하겠지만 명절에는 신선식품 부문에 타격이 있을 것이고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는 명절 선물세트에서 5만원 미만 세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정육·수산·과일 같은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5만원 이상 제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국회에서의 법 개정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청와대도 내수 위축을 우려하며 법보완 필요성을 언급했고 국회에서도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개정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향후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명절선물세트에서 한우, 굴비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법 개정을 통해 적용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이 제외된다면 명절 매출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일부 부처는 법제처에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상한선을 둔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해 내용 조정을 요청했다. 선물수요에 한 해 장사의 기대감이 몰려 있는 유통업계는 특히 추석 대목을 앞두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다. 추석이 김영란법의 예비고사가 되는 셈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김영란법의 선물가격 상한선인 5만원미만에 맞춘 선물센트를 늘리거나, 예년보다 중저가 상품의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백화점업계는 이번 추석에 판매할 5만원 미만의 선물세트 물량을 최대 3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추석에 5만원 미만 선물세트 물량을 전년에 비해 20~30% 정도 확대할 계획”이라며 “청과류·건어물·통조림·햄 등 가공품 중심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영란법도 있지만 소비침체 장기화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 트렌드가 이어져 왔었기에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백화점은 대목을 앞두고 선물세트를 늦어도 4개월 전, 빠르면 6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백화점은 명절 선물세트 매출에서 5만원 미만 세트 비중이 이전까지는 5% 미만일 정도로 고가 선물 수요가 많았다. 신세계백화점도 5만원 미만의 선물을 포함해 같은 가격대 선물 종류를 30여개 더 늘리기로 했다.

대형마트는 한결 가뿐하다. 대형마트는 명절 선물세트에서 5만원 미만 세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정육·수산·과일 같은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5만원 이상 제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5만원 미만 선물세트를) 소폭 늘렸다”면서 “대형마트는 생필품 사는 곳이다. 선물세트도 원래 저렴했다. 접대성으로 가는 건지 아닌지가 카운팅이 되는 것이 아니니, 업태 성격상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우선물세트는 5만원 미만은 어렵고, 과일은 명절시즌에 통상 가격이 오르는데 5만원 이하 세트를 한두 품목 더 늘렸다. 생활용품은 많이 나오는 가격대가 원래 5만원 미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관계자도 “어려운 경기 속에 알뜰 소비문화가 퍼지면서 고객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실속 있고 저렴한 중저가 상품을 예년보다 많이 준비했다”고 밝혔다.

외식업 ‘업종 전환 고려까지’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외식업계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급 한정식집들은 아예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한정식집들은 식사 금액 상한선이 3만원으로 시행될 경우 장사 자체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예상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한정식의 61.3%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이다. 무엇보다 1인당 대부분 3만원대를 넘는 한정식의 경우는 인건비, 재료비 등 생산비가 많이 투입돼 가격을 인하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에 따라 서울 중심가의 일부 고급 식당에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주방장 등을 일부 내보내거나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가게를 내놓는 경우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 예외 항목을 늘리는 등의 법 개정을 촉구하는 배경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금도 두 사람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 하면 3만원이 훌쩍 넘어간다”며 “물가가 이런 실정인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매출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매출 하락은 곧 폐업을 의미 한다”고 주장했다.

주류업계에서 단가가 높은 위스키업체들도 매출 하락 우려가 적지 않다. 위스키 업체 한 관계자는 “일정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술집이나 위스키전문점에서만 마시던 위스키를 소비하는 패턴도 최근 생겨난 홈술 트렌드 등에 기인해 바뀔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위스키라는 술 자체가 룸이나 바 등 전문점에서 먹는 술이기 때문에 소비 위축으로 작년대비 5%정도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외식업이라고 해도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계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3만원 이상이 넘는 음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SPC그룹은 ‘라그릴리아’와 떡카페 ‘빚은’ 등을 운영한다. 이들은 파스타 등이 주력메뉴이다. 객단가가 각각 2만원, 5000원 정도로 김영란법 시행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빕스’, ‘제일제면소’ 등을 운영하는 CJ푸드빌 역시 큰 타격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스테이크의 경우 4만~5만원대이지만 보통 객단가가 3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 소비 위축 등 영향을 받는 거니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물 수요가 많은 화장품 업계의 타격도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5만원을 기준선으로 중저가와 고가 브랜드 별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고급 화장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하락 우려가 크다. SK-Ⅱ, 샤넬, 에스티로더 등 해외 럭셔리 화장품 업체와 국내 브랜드 설화수, 후, 숨 등은 평균 가격대가 5만원선이 넘는다. 김영란법에서 규정한 선물 제한금액 기준에 걸린다. 매출 하락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저가 브랜드들은 직접적인 영향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는 게 화장품 업계 반응이다. 무엇보다 5만원 이상의 상품군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전체 선물 수요 중에서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공무원이나 교사에 대한 선물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는 않다는 자체 분석 때문이다.
중저가 브랜드 화장품은 오히려 반사이익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김영란법인 5만원 이상의 선물을 제한하고 있어, 법에 저촉되지 않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저가 브랜드숍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5만원 이상의 선물을 제한하고 있어 백화점에 입점한 고급 브랜드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평균 가격대가 낮은 중저가 화장품은 큰 타격을 입지 않는 반면 5만원 넘는 고가품은 선물 수요 감소로 큰 타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홈쇼핑, 실소비자 중심…직접 영향 적어
홈쇼핑업계는 김영란법의 시행에 따른 우려가 취급 품목에 따라 업체마다 다소 차이가 났다. 전반적으로는 김영란법의 시행이 홈쇼핑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현대홈쇼핑 등 홈쇼핑업체들은 기존 가격구성과 큰 변동 없이 방송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홈쇼핑의 특성상 선물 용도의 구매보다는 실소비자들의 구매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선물 수요보다 중저가의 실속 상품을 구매하는 실소비자가 많은 구조여서 이 같은 전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김영란법의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현재까지도 홈쇼핑 채널의 방송에서는 ‘4만9900원 김영란세트’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홈쇼핑업계는 김영란법이 올해 추석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이번 명절대목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시행령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벌써부터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선물 기준인 5만원을 맞추려는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홈쇼핑은 차분히 명절대목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별도의 5만원 이하 세트 구성에 나서지 않는다. 현대홈쇼핑은 주부들을 겨냥한 프리미엄 패션·주방용품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주방용품의 편성 비중도 기존 30%에서 40%로 늘렸다. 반면 식품 편성 비중은 10% 감소시켰다. 다만 홈쇼핑, 백화점의 통합 온라인쇼핑몰 H몰의 구성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예상된다. 5만원 이하 상품군이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H몰은 3~5만원대 중저가 실용 상품군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백화점 부문은 어느 정도 영향이 예상되지만 H몰 역시 선물 수요보다는 실수요가 많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GS홈쇼핑 역시 추석시즌 선물세트의 가격대를 기존 그대로 유지하는 등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준비를 별도로 하지는 않고 있다. 이미 명절세트 취급하는 품목군은 수입산 갈비와 중저가의 굴비세트로 ‘김영란법’ 선물 가격 기준인 5만원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결정에 한 배경이 됐다.

홈쇼핑 업체의 연간 편성 비중은 단가가 낮은 패션상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선물 수요가 없는 디지털, 생활가전 등 기타 카테고리 부문도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GS홈쇼핑 관계자는 “패션상품은 5만원 이하의 세트구성이 많다. 특히 TV홈쇼핑은 실소비자가 중심이기 때문에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다. 큰 타격을 없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추이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CJ오쇼핑은 온라인쇼핑몰 CJ몰 ‘식품종가매장’에 한해 5만원 이하 기획상품을 구성하는 단계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고가의 농축수산식품 중심의 선물세트 가격 조정은 어는 정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프라임타임 영업정지 처분’ 악재를 맞은 롯데홈쇼핑은 가을겨울 시즌 방송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우서 협력사들을 중심으로 가을 시즌을 준비 중이지만 선물수요가 없는 패션, 가전상품의 비중이 높아 별다른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NS홈쇼핑이 5만원 미만 선물 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홈쇼핑 빅4의 식품 편성 비중이 10% 안팎에 그치는 것에 반해 NS홈쇼핑은 식품전문홈쇼핑으로 사업 인허가를 받아 식품 방송 편성 비중을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NS홈쇼핑이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축수산업계와 가장 많은 연관성을 맺고 있어 피해 영향권 안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명절 선물세트 구성이 단가가 높은 농축수산품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NS홈쇼핑은 홈쇼핑이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이고, 현재도 지역 특산품을 5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한 고품질의 다양한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어 김영란법으로 인한 영향은 미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NS홈쇼핑 관계자는 “다만 명절 때 선물용 한우나 굴비 같은 고가 선물류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며 “법의 적용을 받는 분들을 위해서 5만원 미만의 선물 상품을 개발해 왔고, 앞으로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