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세상에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중에서

2012년 방영된 드라마 ‘신사의 품격’ 17회분을 보면 불혹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히어로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으면서 철부지 소년보다 더 철없이 말싸움을 벌이는 네 명의 꽃중년들이 등장한다. 장동건은 블랙의 시크함을 가진 배트맨을, 김민종은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 김수로는 날렵한 거미인간, 이종혁은 스댕 로봇 태권브이가 어린 시절 자신만의 슈퍼 히어로다. 이들은 각자의 우상이였던 히어로들의 다양한 초능력 및 옵션을 들먹이며 ‘내 히어로가 더 쎄’하며 핏대를 세운다. 갑자기 웬 슈퍼 히어로 얘기냐고?
이 책에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특이한’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슈퍼카, 레이저 빔, 단단한 스댕의 몸은 아니지만 특유의 엉뚱함으로 무장한 할머니가 손녀의 하나뿐인 슈퍼 히어로다.
손녀인 엘사에게 뉴스에 나올법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히어로와의 작별에 대한 안전한(?) 인지와 엘사의 주위에는 다른 히어로들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직접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엘사의 할머니는 단순한 히어로가 아니다. 왕따를 당하는 손녀를 위해 해코지 하는 아이들을 혼내는 식상한 히어로는 더욱이 아니다. 손녀가 유독 상처받은 날 다른 ‘재밌는 기억을 심어주기’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진 히어로다. 실제로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폐장한 동물원에 담을 넘는 등 이색적인 추억을 선사한다. 특히 어둠을 무서워하는 손녀를 위해 시작된 ‘깰락말락’나라에 5개의 왕국 얘기는 두 사람만의 영원한 동화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마이마스’ 왕국에 기사직을 임명하며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용기를 선물한다. 
행복한 손녀와 할머니 에피소드에 자주 등장하는 ‘암’이라는 질병으로 이별하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뭐, 이 책에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고리타분한 작별로 할머니와 엘사는 이별을 한다. 손녀의 슈퍼 히어로 할머니는 자신과의 이별에 슬퍼할 손녀를 위해 깰락말락 나라 미아마스왕국에 기사로써의 기막히고 엉뚱한 임무를 맡긴다. 이 임무를 수행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깰락말락 나라에 등장하는 인물로 동화와 현실이 기막히게 연관돼있다. 이렇게 엘사는 자신의 슈퍼 히어로 할머니와의 이별을 다른 히어로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엉뚱한 슈퍼 히어로, 할머니의 가장 최고의 옵션은 사랑이다.
나에게도 슈퍼 히어로가 있었다. 멋진 동화로 이별을 알려주진 않으셨지만 영양갱의 꿀맛을 백숙의 다리를 선사하신 나의 영웅, 우리 할아버지.
영화의 등장하는 어떤 히어로보다 위대했던 나만의 슈퍼히어로가 그리워진다.

저작권자 © NEXT ECONOM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