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의 유통업체 쇼핑이 본격화되고 있다.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카페와 외식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대형마트와 메이저급 수퍼마켓까지 사모펀드로 줄줄이 인수되고 있다. 사모펀드로 인수됐거나 인수가 추진되고 있는 기업들은 이랜드 킴스클럽, 프랜차이즈 놀부, 커피전문점 카페베네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곳들이다. 사모펀드의 유통기업 인수의 명암을 들여다 봤다.

사모펀드의 유통업체 인수는 업계에 새로운 투자자금이 들어오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인 후 기업을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이 사모펀드의 운영방식이어서 유통업계의 장기적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통업체들의 경우 제조업체들과 비교해 일시적인 자금 투입으로 외형성장을 빠르게 할 수 있고, 기업가치를 그만큼 일찍 끌어올려 되팔 수 있다는 점에서 사모펀드 진출에 따른 우려가 존재한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랜드그룹의 대형수퍼마켓인 킴스클럽의 지분이 일부가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매각된다. 최종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KKR가 지분 70%를 인수하고, 이랜드는 30%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금은 4000억원대로 전해졌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지분율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매매계약서(SPA) 작성을 위한 실무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랜드와 KKR은 올해 상반기 안에는 SPA를 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킴스클럽 매각도 속도를 냈다. 이랜드는 킴스클럽 매각에 대해 KKR과 지난 13일 바인딩 MOU(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최근 티니위니 매각에 대한 성공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룹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KKR과 오랜 기간 서로 신뢰감을 가지고 진행 해온 기존 내용을 기준으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지금부터 좀 더 전향적인 협상을 통해 양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랜드와 KKR은 앞으로 약 한 달간 최종 매각가와 매각구조를 결정 한 뒤 본 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이랜드가 킴스클럽 매각에 나선 것은 자금 사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에서 이랜드그룹의 지주사인 이랜드월드와 주력 계열사인 이랜드리테일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각각 하향 조정하는 등 이랜드그룹은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태이다.
이랜드그룹은 이번 매각을 통해서 최소 1조5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현재 298%인 부채비율을 200% 선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 관계자는 “지난 6월 초 마감한 중국 티니위니 브랜드 매각 예비입찰에서도 1조원 이상 써낸 현지 업체가 5곳 이상 되는 등 치열한 인수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재무구조 개선작업 완성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놀부·카페베네도 사모펀드로


이랜드그룹에 앞서 국내 3대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지난해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7조2000억원에 팔렸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P&G출신인 김상현 대표를 새로 영입하고 업무프로세스 개선에 나서는 한편 본사 사옥을 서울 역삼에서 강서로 옮기며 경영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모건스탠리PE는 지난 2011년 11월 외식 프랜차이즈 놀부를 1000억원에 인수했다. 김순진 명예회장의 지분 90.44%와 그의 자녀 지분 9.57%를 사들였다. 놀부는 인수된 직후부터 커피·분식·치킨 등 외식 카테코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나섰다.
그 결과 놀부는 분식점 ‘공수간’, 커피점 ‘레드머그커피’, 한정식 ‘오색찬연’ 등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하며 기존의 6개에서 현재 12개로 브랜드를 두 배 가량 늘렸다. 매장 수는 2011년 말 623개에서 지난해 772개까지 늘었다.
이뿐 아니라 놀부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특히 모건스탠리의 네트워크를 이용, 지난해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중국시장에 진출, 2019년까지 중국 전역에 가맹점 500호점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사모펀드 로하튼의 경우엔 제너시스BBQ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BHC를 1200억원에 인수했다. BHC는 피인수 이후인 2014년 ‘창고43’을 인수하고, 지난해 12월에는 ‘불소식당’을 사들이며 빠르게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 BHC는 5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매장은 인수전인 803개에서 1280개로 늘었다.

카페베네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해 말 사모펀드인 케이쓰리제5호(K3제5호)의 전환상환우선주 149만1300주를 모두 보통주로 전환했다. 보통주 전환으로 K3제5호는 84.2%의 지분을 확보, 카페베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카페베네는 이후 부채비율이 856%에서 300% 이하로 떨어졌다.
사모펀드가 사들인 유통업체들은 대체로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외형적 성장을 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일시적으로 회사로 들어 온 데다, 사모펀드들은 가능한 빨리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것에 경영의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회사가치를 올린다는 것은 기업의 재매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는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은 또 다시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등장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모펀드 KKR에 인수됐던 오비맥주는 피인수 4년만인 지난 2014년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에 다시 팔렸다. KKR은 오비맥주를 58억달러(6조1680억원)에 팔아 4조원 가까운 투자수익을 올렸다.
지난 2012년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코웨이도 차익실현을 위해서 조만간 매물로 다시 시장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영난에 처해 있던 회사들이 사모펀드의 자금으로 회생해 시장의 한 축을 여전히 책임질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라며 “서비스 경쟁도 이뤄져서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만 기업가치를 올린 후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해당 업체의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상실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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