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는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국내 최대의 유통기업이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결과에 유통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월 19일 현재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세븐일레븐 등 롯데그룹의 17개 주요 계열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사실상 롯데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놓여 있다. 롯데그룹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검찰 수사는 브레이크가 없어 보여서다. 언제 어디서 방점을 찍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롯데그룹 안팎의 소리다.

검찰의 압박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검찰 수사 여파로 연기된 호텔롯데의 상장을 올해 안에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한다는 명분과 함께 신동빈 ‘원 리더’ 구축의 핵심 사안이다. 이로써 17개 계열사 압수수색이라는 이례적인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롯데의 전략방향도 명확해졌다.

검찰의 수사에는 최대한 협조하되 호텔롯데의 상장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호텔롯데의 상장을 성사시켜서 일본계 주주들의 지분율을 낮추면서 면세점 투자금 등을 확보하는 과제를 롯데 임직원들에게 다시 주문한 셈이다.

지난 15일(국내시간) 새벽 신동빈 회장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국민과 약속한 사안이니까 (호텔롯데를) 꼭 상장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13일 호텔롯데가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 것에 대해서도 “무기한 연기가 아니고 연말 정도까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상장 시기까지 못을 박은 것이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이후 신동빈 회장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였고, 정면돌파를 위한 승부수였다.

지난해 8월 신동빈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주주 구성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과감하게 지배 구조와 경영 투명성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호텔롯데의 상장을 가시화했다. 이를 시작으로 롯데정보통신, 롯데건설,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롯데리아 등 비상장 계열사들도 연이은 상장이 예견됐다.

한국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상장 추진을 선언하면서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을 확보했다. 또 현재 98%에 달하는 일본계 회사의 지분을 낮추고 기관과 개인으로 주주구성이 확대되면 ‘롯데=일본 기업’이라는 공식이 깨지게 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상장을 통한 주식 대금 환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본 주주들의 마음도 달랬다.
무엇보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신동빈 회장 ‘원 리더’ 체제 구축의 신호탄이었다. 호텔롯데 상장과 이후 지주사로의 전환, 호텔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인 후 신동빈의 ‘원 롯데-원 리더’ 확립이라는 수순의 시작이었다.
호텔롯데 상장으로 마련될 5조원 전후의 실탄을 확보해 글로벌 면세점 1위 달성 등의 경영성과를 이끌어내는 것도 신동빈 체제 구축의 인프라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 주도의 호텔롯데 상장이 “상장하는 것은 회사를 파는 것”이라고 반대해온 신격호 총괄회장과의 차별화 시도로 봤다. 한·일 롯데의 새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이어서 제기됐다.

검찰 수사 후폭풍…호텔상장 연기·면세점 인수 포기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는 롯데에 후폭풍을 안겼다.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가 대표적이다. 호텔롯데는 금융위원회에 지난 13일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철회신고서를 통해 “최근 대외 현안과 관련, 투자자 보호 등 제반여건을 고려해 이번 공모를 추후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며, 대표주관회사 동의아래 잔여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호텔롯데는 당초 6월 29일 상장할 예정이었다. 검찰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연루 의혹 수사로 상장 일정을 7월 21일로 한 차례 연기했다. 이어 지난 10일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한 전면 압수수사에 나서는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결국 상장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로 롯데그룹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기회를 일단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지배체재 확립을 위한 수순이 늦어질 것으로 봤다.

업계는 호텔롯데가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 이에 따라 호텔롯데 상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원-리더’ 체제 강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호텔롯데의 상장과 이어지는 호텔롯데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이 총괄하는 유통과 롯데케미칼의 화학, 롯데제과의 3개축이 주력이다. 롯데는 호텔롯데의 상장을 통해 5조원 전후의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주사로 전환한 뒤 그 아래 유통과 화학, 제과를 수직계열화하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또 일본 롯데그룹의 지분을 낮춰 국내의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일본 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3월말 현재 호텔롯데의 주식은 일본 L투자회사 12개사가 72.7%, 일본 롯데홀딩스 19.1%, 일본 광윤사가 5.5%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일본에서 호텔롯데의 지분 대부분(97.3%)을 보유중이다.
호텔롯데의 상장으로 신주 20%와 구주 15%가 발행되면 이들의 지분율은 65% 전후로 축소된다. 나머지 35%의 지분은 국내외 기관 및 개인투자자가 채우게 된다. 이는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출발점이 된다.

검찰 수사의 여파로 롯데는 또 수조원대의 해외 면세점과 호텔 인수를 포기해야만 했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인수를 계속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최근까지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면세점 인수 협상을 벌였으나 사정당국의 수사와 호텔롯데 상장 불발 이후 실무 작업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면세점뿐 아니라 호텔롯데는 각각 프랑스와 미국 유명 호텔 M&A를 추진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지만, 역시 비자금 수사와 증시 상장 무산 이후 포기했다는 것이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미국 석유화학회사 액시올(Axiall)을 인수해 세계 10위권 화학회사로 도약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롯데그룹 본사와 주요 계열사가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은 10일 롯데케미칼은 미국 액시올 인수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검찰소환 초읽기 ‘신동빈의 남자’ 3인방…“주군 사수”
롯데그룹 입장에선 이 같은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는 처음이다. 롯데는 검찰의 백화점식 수사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의 칼끝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겨냥하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동빈의 남자’ 3인방으로 불리는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과 황각규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 등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른바 ‘주군을 살리기 위해’ 이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관심이다.
‘신동빈의 남자’ 3인방은 일찌감치 출국금지 명단에 올랐다. 검찰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소환, 피의자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역할에 따라 구속도 감수해야한다.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이인원 정책본부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의 집무실과 자택도 압수 수색했다. 수사에 가속도가 붙은 검찰은 조만간 이인원 정책본부장 등 3인방의 소환을 저울질 하고 있다.

검찰의 3인방 소환이 불가피한 것은 이들이 롯데그룹의 콘트롤타워인 정책본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책본부는 지난 2004년 신동빈 회장이 그룹 경영관리본부를 확대 개편해 만들어 초대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70여개의 계열사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정책본부는 롯데쇼핑에 속해 있다. 그룹 정책의 큰 틀을 제시하는 곳이다. 정책본부는 특히 롯데의 경영권 분쟁 이후 신동빈 회장의 ‘원-리더’ 체제 구축에 힘을 실어왔다.
이인원 정책본부장은 지난 2011년 신동빈 회장에 이어 정책본부장에 오른 인물이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후 그룹 업무 전반을 거친 이인원 정책본부장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오랜 시간 인연을 맺고,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동빈 회장을 지지했다.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은 이인원 정책본부장이 키워준 인물로 알려졌다. 이인원 정책본부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업무보고를 할 때마다 항상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을 챙겨서 들어갔다고 전해질 정도다.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은 1977년 롯데쇼핑에 입사해 롯데미도파 대표, 코리아세븐 대표, 롯데슈퍼 대표 등을 거쳤다.
황각규 운영실장은 신동빈 회장의 복심이다. 이인원 정책본부장과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신뢰 속에 그룹에서 성장한 것과는 달리 황각규 운영실장은 신동빈 회장 밑에서 승승장구했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으로 입사한 황각규 운영실장은 후계자 수업을 위해 이곳 상무로 들어 온 신동빈 회장 밑에서 일했다. 지난 19년 동안 롯데그룹의 인수합병을 총괄하면서 신동빈 회장을 수행해 왔다. 경영권 분쟁 발생 이후에는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호텔롯데 상장 등 관련 대소사를 실질적으로 전담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계열사 십여 곳을 압수수색하면서 강도 높게 나온 이상, 궁극적으로 오너의 형사처벌까지 간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핵심 측근들은 이를 막는데 집중할 텐데, 누구의 혐의가 입증되느냐 하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금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라도 이를 지시한 게 신동빈 회장이 아니라면 (신 회장의) 형사처벌은 쉽지 않다는 함의를 깔고 한 말이다.
롯데그룹은 검찰의 이례적인 압박 수사 속에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오너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신동빈의 남자’ 3인방의 대응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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