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여행지에서는 나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 만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곧 다시 만나요, 손을 흔들고 헤어질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내가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나를 생각한다.
-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중에서


이제 곧 바캉스 시즌이 돌아온다. 팬티만 입고 놀아도 신이 났을 때에는 계곡, 산, 바다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지만 교복이란 것을 입고 나서는 친구들과 워터파크가 최고의 바캉스였다. 그리고 사회인이란 옷을 입고, 카드라는 노예계약을 하고 나면 비행기도 탈 수 있게 됐다. ‘몰디브에서 모히토’ 한잔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 사회인이란 옷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이유의 옷을 겹겹이 입혀준다. 그래서 이번 바캉스 시즌에도 에어컨과 쇼파와 삼단합체가 될 불쌍한 나의 몸뚱이를 위해 여행 책을 골랐다. <여행, 혹은 여행처럼>은 노을이 지는 바닷가. 에메랄드빛 해변, 고즈넉한 고궁 등 세계 각지 유명한 명소를 배경삼아 인증샷만을 남기고 떠나는 그런 여행은 없다.
대신 당신이 이미 여행자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여행자 말이다.
2014년 세부 여행 중에 호텔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차려입은 아가씨가 장장 두 시간 동안 셀카만 찍는 것을 봤다. 그러탐 그녀의 여행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여행의 방법, 방식, 계획 등은 모두 자신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여행은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CBS 라디오 프로듀서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행을 좀 더! 가치 있게 보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소개하고 나섰다. 현재의 것에게 과거의 회상을 담아 엽서 보내기,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다른 여행지의 에피소드 듣기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 느낀 나의 감정과 비교하기, 여행지에 그 누군가가 되어 보기 등이다. 이와 함께 이 책에는 저자가 만난 각기 다른 사람의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도 틈틈이 등장한다. 특히 구호기관 자원 활동가로 활동하며 캄보디아 난민들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임종진 에피소드가 볼만하다. 작가는 임종진의 캄보디아 여행기를 통해 사람을 낮춰보지도 않고 사물로 보지도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배웠다. 아름다운 해변도 아니고 들어봤을 만한 관광지도 아닌 난민촌에서 ‘여행’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두 사람의 ‘틀림’이 아닌 ‘다름’이다. 인생 여행자의 진정한 모습이 이런 것일까?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그러나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보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이다.
자신의 인생을 여행 하고 있는 여행자여, 당신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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