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랩톱을 쓰셔야겠죠?”
오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위협적으로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아니. 난 ‘랩톱’을 원하는 게 아냐. 컴퓨터를 원한다고”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을 가르치듯 말한다.
“랩톱이 바로 컴퓨터예요” 모욕을 당한 오베는 그를 노려보더니 삿대질을 하며 말한다.
“너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중에서

고령화 사회, 고령화 사회라고 말들이 많다. 사회가 늙어가다 보니 노인을 등장시킨 소설이 연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오래도록 자리를 내어 주지 않고 있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 <감옥에 가기로한 메르타 할머니>, <오베라는 남자> 등이다. 서점가 노인의 공습, 왜일까? 짐작하건데 노인을 그저 사회적 문제로 치부하는 젊은 것들에 대한 일침이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베’는 우리나라 91년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빠’를 연상시키면 쉽겠다. 고집불통에 가부장적이고 버럭 호통!은 기본인 그런 사람이다. 나의 표현으로는 통나무 같은 남자다. 그런데 <오베라는 남자>는 외국 소설이다 보니 빠다(버터를 왠지 ‘빠다’ 라고 해야 할 것 같다.)냄새가 많이 난다. 서양식의 특유의 유머, 개인주의 적인 성향 등이 조금은 다르지만 나이 지긋한 노령의 통나무 같은 남자의 얘기다.
오베는 알람 없이 매일 아침 6시 15분에 기상해 아내와 커피를 먹고 동네순찰을 돈다.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지 말아야 할 차가 주차 돼 있는지, 자전거 보관함을 잘 잠겨있는지 발로 툭!툭!차며 확인하고 메모한다. 직장을 잃었을 때도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365일 계속 같은 삶을 산다. 결국 오베는 혼자됨에 지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모쪼록 최대한 피해 없이 조용히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그런데 조용하고 안락한 자살(?)을 방해하는 젊은 것!들이 등장한다. 운전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폰 프로그래머, 운전면허가 없는 세 아이의 엄마, 고도비만 청년, 자신의 성적취향에 대한 고민하는 소년 등등 지금까지 나름대로 만족하는 자신의 삶에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출연한 것이다. 오베 표현을 빌리자면 머저리! 같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작가는 오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장인물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시키며 노인의 해묵은 능력에 대해 어필한다. 태블릿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아이폰 프로그래머지만 트레일러 달린 일제 자동차 운전은 할 줄 모르는, 운전면허증이 없는, 부지런 하지 못해 비만인 젊은이들의 신선한 무능함을 대립적으로 담아 편견과 융화라를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강압적이지 않는 유머로 풀어내고 있다.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이어나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 꼭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 떼 묻은 옛날 물건들의 대한 자부심과 동질감 등 오베는 이유 있는 늙음을 대변하고 있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의미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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