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위한 규제, 소비자 선택권 제한하고 부담 될 수도

소비자문제는 일반적으로 생산체제가 발전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생산자 소비자간 정보격차나 비합리적 선택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소비자문제가 있었다. 상거래 질서를 위해 집행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 따르면 기구(器具) 등을 제조함에 있어 견고하게 만들지 않거나 견직물, 포목 같은 천을 얇고 좁게 만들어 거래한 경우에는 판매한 자에게 볼기 50대에 처하도록 했다. 그 외에도 상품의 가격을 조작하는 것, 강제적으로 매매를 체결하는 것, 속임수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처벌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1) 어찌 보면 오늘날 소비자보호의 주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런 문제들이 정부가 상인을 단속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 소비자의 권리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특별교서에서 소비자의 4대 권리가 언급됐고 우리나라의 경우 1960~70년대의 개발연대 경제성장에 힘입어 소비자들의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선 80년대 초 경제안정화 시책이 전개 되면서 우리 경제도 산업화시대에서 소비자시대로 전환이 시작됐다. 헌법에도 소비자운동 권리가 규정되고 당시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현행 소비자기본법)의 제정이 이뤄졌으며 정부 내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보호원(현재 소비자원)이 설치됐다.
이제 누구든 소비자권익 보호의 중요함에 대해 이견이 없고, 정부 각 부처들도 앞 다퉈 소비자보호 부서를 신설하거나 늘리고 소비자보호를 위한 규제들은 규제개혁에서도 예외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초 의도와는 달리 소비자보호를 구실로 한 정부조직과 규제 권한은 늘어나는데 정작 소비자의 권익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금융거래의 경우, 해킹이나 정보보호를 이유로 늘어난 규제들로 인해 각종 대금결제나 송금 등의 거래가 짜증날 정도가 됐고,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한 규제의 영향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 이용도 복잡한 비밀번호를 요구하게 돼 어디엔가 비밀번호를 적어두지 않고는 기억하기 어려워져 오히려 개인정보 도용 위험이 증가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과당경쟁이나 무분별한 사업 참여로 인한 소비자피해 방지를 명문으로 하는 규제들 예컨대 최근 이루어진 TV홈쇼핑, 면세점, 인터넷 전문은행 등의 허가를 통한 진입규제 등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제한해 가격이나 수수료가 인상되고 소비자 부담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방문, 다단계판매 등 직접판매유통에 대한 후원수당규제나 상품판매가격한도 규제도 오히려 직접 판매를 통한 상품판매를 어렵게 해 유통채널간 경쟁을 제한하거나 탈법행위를 조장하고 미처 이러한 규제에 대비하지 못한 미숙한 사업자들을 제재하는데 그칠 뿐, 결과적으로 그로 인한 비용의 부담은 소비자들의 몫이 된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소비자보호 수준을 높이라고 규제하는 것이 무조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기업들은 정부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만큼 소비자들에게 가격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고 상당 부분은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차량 소유가 보편화 되면서 자동차와 관련된 소비자문제가 다발하고 있고 국토부는 금년 업무보고에서 신차 결함으로 발생한 트러블에 대해서 환불이나 교환을 의무화하는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차량 결함으로 인한 피해구제는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정부도 이에 조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신차로 교환하는 것이 적합한지 혹은 무상 수리가 적합한지는 정부가 정해 강제할 사항은 아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소비자 분쟁해결기준도 있거니와 수리기간 중의 불편도 포함해 관련 피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 하더라도 신차교환 여부를 정부가 정해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차량 구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차량을 값싸게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권리를 해칠 수도 있다.

요컨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소비자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소비자의 선택을 대신해 정부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해치거나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원론으로 돌아가지만 소비자보호의 핵심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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