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경제의 개발 연대를 생각해 보면 유통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보다 1, 2차 산업에 기생하는 산업으로 치부됐고 유통업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은 비중을 줄여나가야 할 대상으로 배웠다. 3차 산업의 노동 한계 생산성은 사실상 제로여서 3차 산업 고용은 줄이고 제조업과 같은 2차 산업의 고용을 늘려 나가야 경제가 발전하는 것으로 알았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그러한 목표는 실현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3차 산업 중에서도 금융, 정보통신산업 등 서비스산업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데 종래 산업정책은 산업단지 공급이나 금융지원 기타 공공 서비스 지원까지 모두 제조업 중심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비스산업 발전법’의 입법이 중요하다며 노동개혁 입법을 비롯해 반드시 통과돼야 할 5대 법안의 하나로까지 손꼽히게 됐다.

그러나 유통산업은 전통적으로 서비스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서비스의 축에 끼지 못하는 듯하다. 아직도 다른 산업에 기생해 부가가치를 빼먹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통마진을 챙기는 산업에 불과하고 ‘유통산업 선진화’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유통마진을 줄이는 것이니 산업 전체로 보면 부가가치가 줄어드는 역설에 봉착하게 된다.
네트워크마케팅이라고도 하는 다단계판매나 방문판매가 비난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체로 이들 유통방법이 상품을 판매하는데 투입되는 인력이 많고 유통마진도 높은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 분야에서 유통되는 상품들은 대기업 브랜드 상품이 아닐 경우 보다 적극적인 정보 전달과 인적관계를 통한 신뢰가 없으면 팔리기 어려운 상품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농수산물 유통도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차, 소위 유통마진이 크다는 이유로 늘 유통구조 개선대상 1호로 꼽혀 왔다. 그러나 농수산물은 개별 공급업자들이 적다보니 수집해야 하고 당연히 품질도 동일하지 않아 균질화 작업이 필요하며 저장기간도 짧아 유통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들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채 부당한 비판과 규제로 대응하는 경우 소비자의 부담만 늘리게 될 뿐이다.

네트워크마케팅의 경우 유통마진을 높이는 원인 혹은 유사수신행위로의 변질을 이유로 후원수당과 단위 상품 가격까지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후원수당은 일종의 마케팅에 대한 보수인데 그런 논리라면 상품광고와 같은 마케팅 비용도 규제해야 할 것이다. 창조경제를 책임진다는 미래부가 소비자피해 우려가 있다며 통신다단계를 규제하는 것은 더욱더 황당하다. 그런 논리면 골목까지 있는 통신판매점 숫자도 제한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후원수당은 소비자에게 환원되는 것인데 소비자피해를 막기 위해 규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거니와 네트워크마케팅에 적합한 상품인지 여부는 상품 특성에 따른 것인데 단위 가격을 규제하는 것도 비합리적이고 오히려 규제에 맞추기 위해 상품을 쪼개는 경우 소비자를 불편하게 할 따름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이나 이에 동반한 갑질 논란에서도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유통업이고 때로는 부당한 비판과 규제로 이어지게 된다. 백화점의 고율 임대료나 홈쇼핑 수수료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고 높은 유통마진의 원인이라는 비난에 더해 갑질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실은 고율의 임대료나 수수료를 규제한다고 해서 가격이 싸지는 것은 아니다.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임대료나 수수료가 높은 것이지 임대료나 수수료가 높다고 상품가격이 비싸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료나 수수료를 낮추려면 홈쇼핑 채널의 개설을 자유롭게 하고 백화점과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개점을 쉽게 해서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책 방향은 그 반대이다.
특히 규제나 비판의 일관성도 결여됐다. 대형마트의 성장은 재래시장과의 경쟁을 촉진해 유통마진을 줄이는 기능을 한 것인데 유통마진을 줄이면 재래시장의 영세상인의 사정이 어려워진다면서 대형마트나 그 계열의 동네 수퍼마켓 영업까지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대리점이나 가맹점에 대한 본사의 갑질 규제도 자칫 잘못 적용되면 비효율적인 대리점이나 가맹점들의 퇴출을 제한하게 되고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유통시장에서 경쟁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면 유통마진이 크다는 것은 유통의 비효율을 뜻하기보다 그만큼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유통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사이의 장소적, 시간적 차이를 해소하는 택배나 창고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격차를 메우고 신뢰를 보완하는 산업이기도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의 만족을 높이는 명품브랜드를 창조하는 기반이 된다. 엉뚱한 규제로 유통산업의 발전을 해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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