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한옥스테이

친구란 무엇일까? 영화<친구>에서는 ‘오래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 말한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우리는 친구를 잃어버리고 산다. 인간은 저마다의 편리를 쫓아 이곳저곳으로 터를 옮겨 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수백 년을 한 자리에 뿌리내린 한옥이야 말로 오래되었지만 낯설지 않은 벗이다. 심신이 지쳤다면 포근하게 나를 안아줄 친구 같은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보자. 친구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고 쉼표 하나 찍어줄게다.

느리게 천천히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느리게, 천천히 산다는 것은 그와 반대로 살아가는 요즘시대에 엄청난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가끔 느림의 미학을 즐길 때 우리 몸과 마음은 진정한 힐링을 체험한다.
충청남도 부여는 백제의 땅이다. 백제는 부여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라는 패망했지만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삶을 이어간다. 신라의 수도 경주가 그렇듯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 역시 경주에 뒤지지 않는다. 노천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리곳곳에 역사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부여 읍내에 있는 민칠식 가옥은 번잡스러운 도심을 떠나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꽤나 넓은 터가 나온다. 그 중심에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고택 뒤 야트막한 산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노송과 느티나무 그리고 울창한 대나무가 병풍처럼 드리워졌다. 그리고 남쪽을 바라보는 앞면에는 비옥한 들녘이 펼쳐지고 왕포천이 흘러 금강에서 합류한다.
사랑채를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자 구조의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소곳하게 내려앉은 눈이 한옥의 정감을 더한다. 따뜻한 햇볕을 받은 기와에서는 눈이 녹아 고드름이 열렸고 그 줄기를 따라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부엌 옆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현대식으로 꾸며진 화장실이 있다. 한옥의 정취는 가져가면서 불편함은 최소화한 노력이 엿보인다.

한옥에서 잠시 멈추어 서다


뒷산을 바라보고 걸음을 잠시 멈춘다. 눈을 감고 귀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작은 바람에 댓잎이 흔들리며 말을 걸어온다. 마른 댓잎과 젖은 댓잎의 소리가 다르다. 키 큰 대나무와 키 작은 대나무의 소리가 다르다. 실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니 댓잎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은빛 찬란한 태양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 힐링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바쁜 틈바구니 속에서 잠시 주위를 살펴보는 것. 그것이 힐링이다.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한옥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자연의 품에 머물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 손때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모습이 자연 그대로다. 숨 막히는 콘크리트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한옥의 흙벽과 나무의 생명력은 즐거움을 넘어 자연으로의 복귀를 외친다.
한옥에는 문이 많다. 미는 문, 여는 문, 천정에 부착하는 문. 문의 형태도 여러 가지다. 그 가짓수만큼 용도도 다양하다. 사람이 다니는 문, 바람이 다니는 문, 그리고 빛이 다니는 문. 한옥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까지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하지 않던가. 즉, 머리는 차갑고 발은 따뜻한 게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온돌난방을 하는 한옥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이불만 덮고 있으면 금세 따뜻해진다.
느림의 여유를 꼭 멀리까지 와서 찾을 필요는 없다.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때 느끼는 행복감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다. 무엇에 구속됨 없이 천천히 숨 쉬고 행동하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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