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을 찾기 전날 밤 많은 눈이 내렸다. 눈송이를 흩뿌려놓은 창밖의 풍경은 순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도로에 소북이 쌓인 눈과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 위로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는다. 번화해야할 역전은 오가는 사람 없이 한가롭다. 평양장, 대구장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장이었던 강경은 금강 뱃길이 막히면서 끊어졌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시간이 멈춘 듯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이 반갑다.

강경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강경 여행을 겨울에 떠나서 다행이다. 온 세상에 새하얀 눈이 내려 채도가 낮아졌으니 말이다. 과거의 시간 속에 일순간 멈춰버린 흑백사진을 보는 것 같다. 까까머리 학생들이 검정색 교복을 입고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강경상업고등학교 옛 관사 앞에 서니 이국적인 건물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1931년 교장 사택으로 지은 건물이다. 지붕이 한국의 건축미와 일본식의 건축양식이 더해져 이색적이다. 이어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을 찾았다. 강경읍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체육관 겸용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37년 준공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도 제 용도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역사 속 현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리는 듯하다.
구 남일당 한약방을 찾아가는 길은 골목길이다. 아니 현대 도시인의 눈에 골목길로 비춰질 뿐 당시에는 꽤나 번화했을 중심상권이었을 게다. 남일당은 ‘남쪽에서 제일 큰 한약방’이란 뜻이다. 실제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충남과 호남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려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2층 규모의 적산가옥이 영화<장군의 아들>세트장을 옮겨놓은 것 같다.
눈길을 총총거리며 국궁을 계승하고 있는 덕유정과 강경의 번성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옛 노동조합, 신사참배를 거부한 뒤 복음의 피를 뿌린 순교자들의 강경교회당 건물을 연이어 찾았다.

가야할 곳을 찾아가는 여정, 강경여행
강경읍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옥녀봉으로 들어선다. 봉우리란 말에 혹시 높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주 야트막한 구렁과 같은 곳이다. 평야가 발달한 강경에서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니 꼭 찾아보길 바란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사방에 거칠 것이 없다. 한편에는 강경읍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은 마을에 교회첨탑이 예닐곱 개는 되어 보인다. 팍팍하고 힘든 시간을 믿음으로 채운 사람들의 터전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유유히 흐르는 강경천과 금강이 만나서 서해로 흘러간다. 그 모습이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다. 여행은 결국 정처 없이 떠도는 방황이 아니라 갈 곳, 가야할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20여분 거리에 있는 황산전망대에 올라서도 비슷한 풍광을 볼 수 있다. 그 아래 팔괘정과 죽림서원, 임리정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긴 역사만큼 오랜 시간 강경에 터를 잡고 제 몫을 담당했던 선조의 흔적들이다.
지난 시간들 속 강경의 모습은 ‘멈춰버린 시계’, 아니 어쩌면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다가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강경의 속 깊은 아름다움을. 시간의 여백이 아름다운 강경을. 세상 시계에 강경이 함께 초침을 맞추기 전에 이곳을 찾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것도 눈 오는 겨울에…….

■여행정보
●찾아가는 방법 : 네비게이션 검색(강경역) 대중교통은 용산역에서 강경역까지
기차 이용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대흥로 1
●숙소 : 강경읍내에 숙박할 수 있는 여관과 모텔이 있다. 좀 더 시설 좋은 곳을
찾는다면 논산시나 연무대쪽으로 가면 된다.
●문의 : 강경읍 사무소 041-746-8502 http://ganggyeong.non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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