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상생가치 ‘휴지통’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을 주축으로 한 국내 유통업계 ‘빅3’가 아웃렛에 올인하고 있다. 백화점의 신규 점포 출점이 어려워진데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실속 있는 구매를 의미하는 ‘가치’ 소비의 확대 움직임에 발맞춘 행보다.
아웃렛은 연간 30% 이상 성장하며 백화점의 새로운 유통채널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롯데는 기존 아웃렛 보다 더 할인된 상품을 취급하는 ‘롯데 팩토리아웃렛’까지 개점하면서 아웃렛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 빅3의 아웃렛 확장경쟁에 재래시장은 물론 지역 생계형 중소유통업체들의 상권이 황폐화되고 있다. 유통가에서는 대기업의 상생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웃렛 순항, 프리미엄→도심형→이어 팩토리까지 ‘확장’
인천 항동의 롯데 팩토리아웃렛 인천점은 지난 5월 ‘아웃렛을 아웃렛 한다’는 모토로 문을 열고 순항중이다. 개장 첫달, 열흘 정도의 영업에 목표보다 50% 많은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6~7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국내 유통 점포들이 고전하던 시기에도 이곳은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 개장 이후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 수는 20만명을 넘었다. 팩토리아웃렛은 프리미엄 아웃렛, 도심형 아웃렛에 이은 또 하나의 아웃렛 승부수다.

창고형 아웃렛은 판매수수료를 내리고, 직원 수도 줄여 인건비를 절약하고, 장기 재고 비중도 높여서 기존 아웃렛보다도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한다. 대대적인 가격할인이 핵심이다. 실제로 이 점포의 평균 품목별 할인율은 40~70%로 기존 도심형 아웃렛보다 20~40% 저렴하다.
롯데 관계자는 “팩토리아웃렛을 프리미엄아웃렛, 도심형 아웃렛과 함께 아웃렛사업의 한 축으로 키울 계획”이라며 “팩토리아웃렛 점포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롯데는 2020년까지 아웃렛 점포만 40개를 출점할 계획이다.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과 도심형 투 트랙 전략에 창고형 아웃렛이 가세하면서 속도를 높이게 됐다.

2007년 프리미엄아웃렛 여주점을 열며 백화점 3사 중 아웃렛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던 신세계는 경기도 시흥에 2017년 상반기 신규 아웃렛을 출점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프리미엄아웃렛을 표방하고 있다. 꾸준한 점포 출점과 임대료 상승에 힘입어 최근 5년간 연평균 40%의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아웃렛 시장 진출을 선언한 현대백화점은 가산점에 이어 올해 김포점을 선보였고 올해 하반기에 송파점과 동대문점을 열고 내년 4, 5월쯤 송도점을 개장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광역시 중심으로 또 다른 신규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웃렛에서는 백화점에서 팔던 의류와 잡화를 최소 30%, 최대 90%까지 싸게 판매한다. 30만원은 줘야했던 셔츠도 아웃렛에서는 15만원 이내에 살 수 있다. 130만원을 훌쩍 넘는 가방도 아웃렛에서는 45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아웃렛은 이제 단순한 할인판매 채널에서 벗어나 극장, 헤어숍 등 문화시설과 식당가까지 갖춘 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이 가능한 데 이어 백화점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아웃렛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다. 예전에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질 좋은 제품을 보다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예전 아웃렛은 ‘땡처리’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뭔가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아웃렛이라는 유통채널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해 진데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쪽으로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웃렛의 전방위적인 확대 속에 지역 중소 상인들은 생존권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중소 상인들은 지역상권 초토화가 예상된다며 실효성 있는 규제 방안을 촉구 중이다. 이들은 유통 재벌들이 지역 상권과의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상생 방안에 대해서도 ‘허울’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웃렛의 개점이 지역상권 붕괴의 주요 요인인 것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소상공인진흥공단이 파주 신세계 첼시, 롯데 프리미엄몰 아웃렛 반경 5~10Km 이내의 상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인근 상권은 출점 전과 비교해 매출이 무려 46.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식·음료 업종은 80% 가까운 매출 급락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돼 지역상권 파괴가 여실히 드러났다.
올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아웃렛 입점 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 비율이 84.2%에 달했다. 그 중 월매출 2500만원 미만 영세 업체 92.5%가 대기업 아웃렛 입점 후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은 “아웃렛 등 복합쇼핑몰은 지역 상권에 핵폭탄급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매출이 30% 하락하면 폐업을 고민하고, 50% 하락하면 그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점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원거리 지역의 지역 상권까지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빅 3는 아웃렛의 출점이 고용창출을 유발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 또한 비정규직의 양산에 그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채익 의원(새누리·울산 남구 갑)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대형 아웃렛 직원 77.2%가 용역직”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이 롯데·현대·신세계 등 ‘유통 공룡 3사’로부터 취합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운영하는 백화점·아웃렛·대형마트·면세점의 정규직 비중은 모두 60% 미만이었다. 이 중 아웃렛은 용역직이 77.2%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정규직 비율은 18.0%에 불과했다.

또 아웃렛의 용역직 비중은 2012년 71.3%에서 2013년 74.2%, 2014년 77.2%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용역업체를 선정해 다양한 업무 계약을 맺는데 이들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한 직원은 비교적 쉽게 교체할 수 있어 고용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규철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유통 재벌들은 상생 협약장에서만 머리를 숙일 뿐, 본질적으로 상생 의지가 없다”며 “지역경제에서 소매업을 하던 사람들을 몰락시켜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 점원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상생협약을 세분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영업정지 등 강력한 제재수단이 뒤따라야 한다”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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