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강소기업이 즐비한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백년 넘게 가업을 이어 받은 기업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또한 가업을 이어 받는 전통이 세계 최고 기술을 낳고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과 최근 가업을 이어받은 기업들의 고용 창출 효과가 오히려 새로운 창업에 비해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기업 승계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을 해 돈을 벌면 자식은 공무원이든, 회사든 큰 빌딩의 깨끗한 사무실로 보내고 가업은 당대로 문을 닫는다고 한탄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 없지만 5대째 이어온 일본의 장어덮밥집 이야기가 있다.
‘우리 서울대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굴지 대기업에 들어가 그 회사 사장이 될 것으로 촉망받던 엘리트 간부가 어느 날 느닷없이 부친상을 당한 후 사표를 제출한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 했지만 얼마 후, 그는 작은 장어덮밥집의 요리사가 되었다. 5대째 장어덮밥집의 가업을 이은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구심을 풀었다’
일본이 이러한 동경의 대상이 된 것은 단지 우리 이웃에 있어서가 아니다. 백 년 넘게 살아남은 기업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근대산업의 요람인 유럽의 선진국들을 제치고 일본에 장수기업들이 더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일본에서 이 같은 기업을 ‘老鋪(시니세)’라 하는데 전문가들은 일본에 시니세가 유난히 많은 이유 중 하나로 소위 장인정신이란 것을 들고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職人(쇼쿠닌)’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타나는 장인정신은 일본의 경우 보통 회사원들 조차도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하게 만든다. 20년 쯤 전 필자가 일본 어느 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비서 업무를 담당한 여직원이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각종 통계 프로그램을 익혀 도와주던 일이 인상에 남는다.

일본에서도 가업의 승계는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지만 반드시 혈통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업 존속을 위해서라면 데릴사위도 좋고 우수 인재라면 가문과 전혀 상관없이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식을 후계자로 할 때도 장자 승계라기보다 적자 승계였고 최고책임자가 되기 전에는 다른 직원에 비해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는다. 기업의 승계에서 능력주의가 관철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떠받치고 있는 장인정신이나 능력중심주의 전통을 민족성이나 문화라고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은 실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가업 계승의 전통과 관련하여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경쟁과 소비자의 관점이다. 우리는 일본을 집단주의적이고 생산·제조 기술이 뛰어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오히려 치열한 개인주의적 경쟁사회이고 기업의 기술만큼이나 소비자가 뛰어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장인이 존중받는 배경에는 그러한 장인의 상품을 평가하는 소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 도공들이 일본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으며 수대에 걸쳐 그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도기를 알아봐주는 소비자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아직도 배타성, 민족차별 등으로 비난 받는 일본이지만 이미 오래전, 상품과 그것을 만들어 낸 기술 그 자체로 평가하는 시장과 같은 메카니즘이 존재했음을 말해 준다. 어쩌면 좋은 상품을 선택하는 능력을 가진 소비자들과 품질로 경쟁하는 시장의 존재가 장인 정신과 능력주의의 전통을 뒷받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온정주의로 가업을 이은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퇴출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능력주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한 것도, 단순히 전통 때문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유지해온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새로운 창업이나 다른 기업의 월급쟁이를 계속하는 것보다 훨씬 득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서 5대째 이어온 장어덮밥집의 예를 들었지만 일본은 골목의 식당들조차도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 많고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맛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가업을 이어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기업을 이어 받는 일은 흔한 프랜차이즈 창업이나 평범한 샐러리맨을 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일이 된 것이다. 외국의 가업 승계를 흉내를 낸다고 국가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 하여금 좋은 상품을 선택하는 역량을 갖도록 하고 치열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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