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확산에 면세점 재승인도 ‘난감’…유통업계 왕좌자리 ‘위협’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은 일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롯데는 이번 경영권 다툼으로 국민들의 반(反)롯데 정서의 해소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반 롯데 정서의 확산 유무에 따라 유통업계의 왕좌 자리가 위협 받을 수 있어서다. 또 당장 올해 연말에 있을 면세점 재승인이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할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이른바 롯데가 ‘왕자의 난’의 전개과정과 확산중인 불매운동 등 롯데가 직면한 난제를 짚어봤다.

 

롯데 그룹 경영권 분쟁의 향배에 있어서 분수령으로 주목받았던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들은 신동빈 회장의 손을 들었다.
사외이사 선임 및 신동빈 회장과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주주들의 재신임에 관한 안건 등 상정된 안건이 참석 주주 과반수 이상을 넘긴 찬성으로 순조롭게 가결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안건은 경영권 분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신동빈 회장측이 상정한 것이어서 주주들이 신 회장을 중심으로 경영을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지를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일 롯데그룹이 ‘신동빈 원톱’ 체제로 굳어지는 방향성을 보여준 셈이다. 약 20여분간 진행된 주총 직후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 체제 지지를 공표해 이를 뒷받침했다. 롯데그룹 측도 이날 입장자료를 내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번 주총을 통해 주주와 임직원 모두 신동빈 회장과 기존 경영진을 중심으로 경영 안정을 조속히 이루고,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투명성 강화에 주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신동빈 회장의 원톱 체제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를 함께 경영할 적임자는 일본인 아내가 있는 신동빈 회장일 수밖에 없다는 일본의 정서적인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동빈 회장의 아내인 마나미씨는 일본의 대형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이다.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을 정도의 재원이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은 신 회장의 1987년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총리가 세명이나 참석해 당시 한일 양국 간에 화제를 모았다. 반면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1992년 재미교포 사업가의 둘째 딸인 조은씨와 결혼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일본에 완벽하게 동화되기 어려운 조건을 선택한 셈이다. 롯데그룹 왕자의 난은 일단락 된 듯 보인다. 하지만 국내 유통가를 호령하는 롯데의 위기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왕자의 난이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면서 롯데가 사실상 일본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됐고, 이에 따른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면세점, 호텔 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유통과 서비스를 주력으로, 90조원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을 기반으로 발생한 불매운동의 확산은 롯데에게 그룹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 유통업계의 경쟁구도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한 전문가는 “롯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롯데의 기업 위기는 교과서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국적논란은 온라인으로 번지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들불처럼 번지는 롯데 ‘불매 운동’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있기 이틀 전인 15일, 국내에서는 전국 단위 상인 단체, 시민사회 단체, 노동단체 등이 ‘롯데 불매 운동 공동 815선언’을 하면서 롯데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단위로 확대됐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소비자유니온 등이 참여한 이날 ‘롯데 불매 운동 공동 815선언’에는 중소상인, 노동,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롯데 재벌 개혁 요구안이 담겼다. 이들은 ▲롯데 순환출자 즉각 해소 ▲지역경제 파괴하고 있는 초대형 복합쇼핑몰의 출점 전면 중단과 골목상권과의 적합업종 상생방안 마련 등의 약속과 실천을 요구했다.

참가 단체들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도 롯데 재벌 개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들이 내건 국민행동 지침에는 거리·온라인 등 롯데 불매 범국민 서명 운동 참여, 10대 롯데 상품(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 롯데시네마, 롯데월드, 롯데주류, 롯데리아, 롯데홈쇼핑 등) 불매 적극 참여 등이 포함됐다. 불매운동은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새삼스런 인식에서 출발했다. 불매운동에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한국 기업이라고 생각했던 롯데가 사실은 일본 기업이라는 데에 따른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한국 기업이라고 강조하더니 결국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주총으로 판가름이 나는구나. 이로써 일본 기업임이 재확인됐다. 불매운동에 동참한다”고 적시했다.
다른 누리꾼은 “일본과 한국 롯데는 분리돼야 한다. 신동빈 회장 사과문대로 지배구조 전환 등 확실히 하지 않으면 롯데 이름이 들어간 모든 것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롯데 불매 운동 공동 815선언’에 앞서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과 소상공인연합회도 롯데 불매운동을 선언하며 각을 세웠다.

13일 금융소비자원은 “롯데 사태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사과 발표는 실질적 내용이나 확실한 약속이 없는 면피용 사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금융소비자원은 “현재 금소원이 진행하고 있는 롯데 불매운동을 소상공인연합회와 연대해 기한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원과 소상공인연합회는 롯데카드,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등 롯데 관련 불매운동을 연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공정한 시장 경제와 대기업 횡포로 인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서민의 피해에 대해서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에서 지배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을 일본에서 99% 정도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상장을 한들 무슨 지배구조 변화가 있을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소비자원은 “롯데는 국내 어떤 그룹보다 낮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보여 지며, 황제 경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정부는 롯데의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 의혹이나 한·일간 자금이동 및 투자, 상속 등과 관련된 전반적 불법행위 의혹에 전면 수사를 통해 조속히 시장의 의혹을 해소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롯데 경영권 분쟁 “모든 추태의 백화점”
롯데의 왕자의 난 과정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불매운동은 그동안 재벌들이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행태에 대한 실망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재벌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권 승계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이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롯데가의 권력다툼을 보면서 폭발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롯데가의 왕자의 난을 보면서 “모든 추태의 백화점을 보게 됐다”고 평가했다. 재벌의 경영권을 두고 현대가는 물론 삼성과 두산도 형제간의 갈등을 빚었는데 그동안 잠잠했던 롯데가 빠질 수는 없었겠지만, 그 정도가 더 심했다는 의미다.

한 시사평론가는 “드라마하고 똑같다.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일일연속극을 본 것 같다”며 “일일드라마의 특징이 막장인데, 오히려 드라마로 만들면 ‘설마 저럴까’ 싶을 정도로 재벌가의 속내가 일일 중계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롯데가의 속내가 속속들이 들어났는데, 이것이 국민들에게 롯데라는 기업을 되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실망감이 더 커졌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롯데는 식품과 유통에서 성장해 93조원 그룹이 됐다”며 “롯데 시네마, 롯데마트, 롯데 자이언츠, 롯데백화점, 롯데 편의점(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등 일반 국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롯데와 마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처장은 “(롯데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보다 중소기업이 열심히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곳을 차지하면서 성장했다”고 비판했다.
롯데홈쇼핑이 대표적이 사례로 제시됐다. 안 처장은 “롯데홈쇼핑은 원래 우리 홈쇼핑이었다. 우리홈쇼핑은 정부에서 중소기업 몫으로 채널 하나를 내준 것인데, 그곳이 어려워지니 롯데가 인수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열사 편의점의 ATM도 롯데기기를 갖다 놓는데, 롯데는 이 사이에 아무 것도 안하는 중계 계열사를 만들어 놓고서 이익을 몰아주기도 했다”며 “이 건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롯데면세점, 재승인 탈락 가능성 거론 돼
이 같은 반 롯데 정서의 확대는 당장 올해 연말로 예정된 롯데면세점의 재허가 여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에 실시될 서울시내 면세점 재입찰에서 롯데가 탈락할 가능성마저 거론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를 비롯한 면세점사업자들은 그동안 큰 하자가 없을 경우 거의 자동적으로 면세점 재승인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해 말 허가가 끝나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 등 2곳에 대한 재승인 여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롯데를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롯데리아 등 롯데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이 같은 정부의 시각 변화를 암시한다는 해석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유통업계에서는 정부가 반 롯데 정서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을 감안해 올해 말 면세점에 재허가 문제를 백지 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솔솔 나온다. 정부가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설립된 일본 L투자회사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사실상 지배하는 호텔롯데에 면세점 특혜를 준다는 주장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롯데 기업 구조상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에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에 있을 면세점 허가를 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면세점은 한국 롯데 계열사들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핵심 사업이다. 지난해 호텔롯데 매출 약4조8000억원에서 4조원 가량이 면세점에서 나왔을 정도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롯데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서울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면세점 사업권을 사활을 걸고 사수하겠다는 각오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외 홍보를 대대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롯데면세점은 올해 18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한 데 이어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기금을 확보해 각종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활발한 사회공헌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놓겠다는 복안이다.  

지배구조 개선 …“넘어야 할 산 많아”
전문가들은 반 롯데 정서의 확산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경영 투명성의 확보’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복잡한 순환출자로 이뤄진 계열사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것이 1순위로 꼽힌다.
416개의 순환출자고리(4월 기준)로 엮인 롯데의 지배구조는 소수의 핵심계열사를 지배를 통해 전체 롯데 그룹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다. 언제든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취약하다. 이번 롯데가 왕자의 난도 이 같은 취약한 지배구조가 주요 원인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롯데의 416개의 순환출자고리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전체 순환출자고리 459개 중 무려 90.6%에 달한다. 이에 따라 롯데는 올해 연말까지 계열사 지배구조에 대한 정리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은 신동빈 회장이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내놓으면서 가시화됐다.

롯데는 앞으로 유사업종 계열사 간 인수합병(M&A)을 진행할 방침이다. M&A가 본격화될 경우 롯데그룹의 계열사 80개 중 업무영역이 겹치거나 유사한 계열사는 올해 안에 통폐합 된다.
아울러 롯데는 그룹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경영인 도입 확대와 함께 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인 곳은 사외이사 참여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다만 순환출자를 해소를 위한 지주회사 전환은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한 만큼 장기 과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롯데 측도 “재무적 부담 등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가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 작업이 순조로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다. 업계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발을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은 이번 주총에서 ‘원톱’으로 인정받은 신동빈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신동주 전 부회장은 주총 이후에도 신동빈 회장과의 정면 대결을 펼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신 전 부회장은 주총 직후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진 교체 등을 위해) 주총 소집 요구도 생각하고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아시아 금융학회장)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경영권 분쟁의) 조기 진화까지 얘기하는 것은 좀 속단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경영권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다시 점화돼 장기화 될 경우 경영권 다툼 속에 국민들 사이에서 형성된 반 롯데 정서가 잦아들기 보다는 오히려 확산될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지배구조 개선 약속 이행을 비롯해 시민단체·국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등 풀어야할 숙제가 산더미”라며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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