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면세점에 대한 허가를 두 재벌기업에 내어 주면서 유통업계의 희비가 갈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와 관련해 화제가 된 것이 그저 ‘어느 재벌의 누가 웃었고 누구는 안심했으며 어느 그룹은 총수의 불호령이 났다. 삼성과 현대의 합동 전략이 통했고 어느 그룹은 며칠 사이에 주가가 얼마큼 뛰었다…’ 등등이 화제가 되었을 뿐이다.
면세점은 그 수가 많으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정부가 허가한 소수의 재벌기업만 참여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면세점을 아무나 하면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가 특정한 사업자에게만 허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런 비판도 없었다.
만일 그 면세점이 공항의 일정 구역에 입점하는 것이라면 면적을 제한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누가 면세점을 해야 할 지를 정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가? 면세점을 누가 잘할 지는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면세점이 잘하는 것이지 관세청장이 정하는 사업자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고급 면세점 만을 허가해야 외국 관광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면세점만을 허용해 경쟁을 제한해야 외국 관광객에게 비싸게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둘 다 모두 정답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좋은 서비스도 나오는 것이다. 한국 면세점은 경쟁이 별로 없어서 비싸게 판다면 외국 관광객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명품 쇼핑을 하러 한국에 오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면세점은 한국의 관광산업에 기생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비단 면세점만이 아니다. TV홈쇼핑 사업자도 정부(미래창조과학부)가 정한다. 그러나 누가 TV홈쇼핑을 잘 할 것인지도 소비자가 정하면 된다. TV홈쇼핑 사업자를 정부가 정하는 것은 과거 가용 채널수가 한정된 아날로그 케이블 TV시절에 전체 채널 가운데 일정 수만을 쇼핑채널로 허용하던 구시대적 유물이다. 요즘에는 가용 TV 채널의 수가 거의 무한정으로 늘어나고 IPTV의 등장으로 인터넷과 케이블 TV의 구분조차 어려워지는데, 그 중 몇 개 채널만 TV홈쇼핑으로 쓰고 누가 TV홈쇼핑에서 물건을 팔지를 정부가 그것도 미래를 창조한다는 부서에서 정하고 있다는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중소기업을 위해 1개 채널을 선심 쓰듯이 배정했는데 중소기업을 위한 뜻이 있다면 왜 2개나 3개 채널은 허용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한심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운을 걸고 심각한 경쟁을 벌인다. 좋은 상품을 찾아 소비자들에게 팔기 위한 경쟁을 하기에 앞서 관세청장이나 미래부장관에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정부가 소비자를 대신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많은 업체가 시장에 등장하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런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 선불로 대금만 받고 상품을 배달하지 않아 심심치 않게 문제로 등장하는 인터넷쇼핑몰도 전국적으로 2~3개만 허용하는 것이 옳고 소비자 피해하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다단계판매나 방문판매는 더욱 더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허가해야 옳다. 우리가 까다로운 규제로 잃어버린 몇 년이니 하며 비판해온 일본조차도 면세점은 간단한 신청절차로 일정 자격만 되면 누구나 허가받을 수 있고 TV홈쇼핑에 대한 까다로운 허가절차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십여 년 전 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으로 재직 시 통신판매의 한 종류로 방문판매법에 의해 규율되던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여 별도로 규율하도록 하면서 인터넷쇼핑몰에 대하여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몇 가지의 사후적 규제 외에는 자유로운 창업이 가능하도록 했고 소비자피해가 문제되던 다단계판매에 대하여는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가입과 다단계판매 사업자에 대한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되 현실적으로 준수가 곤란한 비현실적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입법을 추진했다. 물론 일부 비합리적 규제들이 다시 강화되는 바람에 당시의 법 개정이 빛을 바랬고 필자도 일부 음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직생활에 큰 피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통시장과 소비자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비자의 니즈를 생산자에게 전달하고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유통산업에서 소비자 주권을 존중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TV홈쇼핑 사업자나 면세점 사업자를 소비자를 대신해 정부가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주권을 빼앗는 일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시장에 대한 권력을 놓기 아쉬워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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