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소비자가 없어 확인 어려워

과자, 아이스크림 등 다수 제품이 권장소비자가격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 가격 혼란은 물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폐지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과자와 라면 등 상당수 제품은 여전히 권장소비자가 표기가 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권장소비자가 표기는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식품업체들이 가격 표시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원래 가격이 얼마인지 알 길이 없어 얼마나 싸게 사는지, 반값할인이 맞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격 미표시율 아이스크림이 최고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 시중에서 판매되는 10개 업체 186개 품목의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등을 조사한 결과 56.5%인 105개 제품이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3년 5월 동일품목에 대한 조사 결과와 비교해 미표시율이 39%에서 56%로 17%높아진 수치다.

품목별로는 과자류의 가격 표시율이 77%에서 53.3%로 무려 23.5% 떨어졌고 라면도 51.5%에서 45.5%로 6%하락했다.

과자류의 경우 롯데제과의 립파이·도리토스 오리온의 고소미·촉촉한초코칩·카메오, 크라운제과의 버터와플·크라운산도·쿠쿠다스, 해태제과의 구운감자·홈런볼·오사쯔 등 31개 제품이 가격 표시가 되지 않았으며 제조사별로 비교 했을 때 농심이 권장소비자 가격을 모두 표시해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율이 가장 높았고, 빙그레와 삼양식품은 단 한개도 표시하지 않았다.

라면은 농심이 76%를 표시했지만, 오뚜기는 모든 제품에 가격표시가 없었으며 농심의 육개장, 삼양식품의 맛있는라면, 팔도의 틈새라면 등 3개 제품은 가격 표시를 없애버렸다.
가장 문제가 되는 품목은 아이스크림 및 빙과류다. 해태제과·빙그레·롯데제과·롯데삼강 등이 판매 중인 31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해태제과의 탱크보이 단 1개에 제품에서만 가격을 확일 할 수 있었다. 반값할인, 1+1행사 비중이 가장 많은 아이스크림 및 빙과류는 2년전 시행했던 조사와 마찬가지로 권장소비자 가격 표시율이 제로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조사별 권장소비자가격 표시율을 살펴보면 과자류에서는 농심이 100%(18개 중 18개)로 가장 높았고, 롯데제과(68.2%)·해태제과(50%)·오리온(40.7%)·크라운제과(37.5%) 순이었다. 빙그레·삼양식품은 가격 표시 제품이 없었다.

정부는 오락가락, 업체는 나몰라라


권장소비자가 표시 논란에 정부도 한몫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7월 오픈 프라이스를 시행했다. 오픈 프라이스란 제조업자가 판매가격을 정하는 기존의 권장소비자가격 제도와는 달리 최종 판매업자가 실제 판매가격을 결정하고 표시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통해 자율경쟁 유도, 물가안정 등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실패했다. 가격을 지나치게 올려 할인율을 과장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시행 1년만에(2011년 7월)폐지된 것.
문제는 정부가 오픈 프라이스 폐지 당시 권장소비자가 표시의무를 자율로 남겨놓은 것이다. 식품업체 관계자들 또한 “권장소비자가격을 자율적으로 다시 표기해 정부 물가 안정책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폐지 된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체들의 참여는 저조하고 정부는 자율이라는 애매한 입장으로 소비자들의 가격 혼란을 부축이고 있다.

업체들이 가격 표시를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물가 안정을 강요하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권장소비자가격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원재료 값 인상인하 등에 민감한 일부제품들의 가격을 가만 하지 않는다”며 “소비자의 불편은 알지만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권장소비자가격 표기에는 수퍼마켓도 반대 입장이다. 수퍼마켓에서는 가격이 표시돼 있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50%에서 많게는 80% 할인 판매하면서 일명 ‘미끼 상품’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가격은 정가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 왜곡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정가 600원의 아이스크림을 1200원으로 책정, 이를 다시 할인해 500~600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을 표시한 제품의 경우 할인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퍼마켓에서는 더 이상 ‘미끼 상품’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모든 제품에 가격이 표시돼 있는 것이 아니고 일부 제품에만 표시돼 있다 보니 가격이 표시돼 있으면 판매처에서 외면을 당할 때가 많다”며 “의욕적으로 가격 표시를 했지만 후발업체들의 참여가 미진하다 보니 확산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한 수퍼마켓에서는 가격 표시된 제품을 아예 팔지 않거나 가격 표시 제품과 가격 미표시 제품을 서로 다른 냉동고에서 구분해 판매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제조업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를 주저하고 있다.
김희석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 사무관은 “아이스크림 시장의 가격 구조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조업체들에 가격 표시를 권고하고 있다”며 “수퍼마켓에서도 가격표시를 하지 않고 ‘반값할인’ 등만 표시해 판매하는 것은 위법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보람 기자 |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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