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을 창업한 고(故) 조중훈 회장은 ‘수송외길’을 철칙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항공이 승승장구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임원이 조 회장에게 이런 건의를 했다.

“기내식에 들어가는 빵이 적잖습니다. 앞으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텐데 이참에 제빵계열사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조중훈 회장이 임원에 호통을 쳤다.
“빵장수도 먹고살아야지!”
30년도 더 된 일화이지만, 한진그룹에서는 ‘빵장수’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역대 정부가 경제를 압축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선택한 승부수는 바로 ‘몰아주기’였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국경제는 대기업 중심의 왜곡된 질서가 자리 잡게 됐다. 이때 나타난 것이 소위 ‘재벌’의 등장이다. 결국 몰아주기의 산물이다.

이제 세월이 흘렀다. 공정 경쟁이 화두가 됐고 정부는 관행처럼 여겨졌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나섰다. 경제민주화라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하고 정부의 강력한 규제정책에 재벌이 화답을 했다. 모두들 관심을 갖고 재벌기업의 행보를 지켜봤다. 유감스럽게도 과거부터 이어져온 관행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그룹 총수 간 사돈지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삼표그룹은 계열사 간 밀월관계를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한 듯하다. 삼표의 레미콘 업체인 (주)삼표의 계열사 중 한 곳의 전체 매출에서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교보·한화 등 3대 생명보험사와 삼성·LIG·현대·동부 등 4대 손해보험사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손해사정업체 위탁 수수료 지급 현황’에 따르면 이들 보험사는 자회사 형태로 손해사정업체를 만들어 일감을 100% 수준까지 몰아주고 매년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챙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를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던 발언에 이미 신뢰성에 금이 간 것이다. 올 2월 대주주 일가 지분이 30%를 넘는 상장사(비상장사 20%)의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발효됐다. 하지만 재벌기업은 시늉에 그쳤다. 아니 꼼수를 썼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공정위의 실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개정법을 통해 그룹 계열사가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몰아줄 경우 해당 법인 뿐 만 아니라 총수 일가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조중훈 회장이 ‘수송외길’을 고집한 것을 이 시점에서 재벌기업들은 그 의미를 곱씹어 봐야할 것이다. 경제는 흐름이고 상생이다. 안에서 다하겠다고 하면 나중엔 밖도 안도 공멸하고 만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빵장수’를 울리고 있는 ‘문어발식 기업’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이야기다.

정부는 요란하게 이벤트성 규제 정책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시장의 감시자로서 빈틈없는 기준과 함께 이를 철저히 집행하고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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